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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47> 남아공에서 온 섬마을 영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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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47> 남아공에서 온 섬마을 영어선생님

입력
2009.04.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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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verybody. What did you do last Weekend?(여러분 안녕, 주말은 뭐하면서 보냈어요?)"

"I watched TV, did Homework.(TV를 보고, 숙제를 했어요.)", "I helped my mom with cooking.(저는 엄마가 음식 만드시는 걸 도왔어요.)"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리 화태초등학교 4학년 교실. 전교생 16명이 모두 모여 원어민 교사와 영어 수업이 한창이다. 파란 눈의 선생님 앞이라 약간 긴장한 듯, 아이들 눈망울이 또랑또랑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교사 존 맥클린톡(35)씨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찾아 다니며 눈을 맞추고 "지난 주말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영어로 묻는다.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답하는 남학생이 있는가 하면, 수줍은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떼는 여학생도 있다.

어떤 학생은 영어 수업이라는 사실을 까먹은 듯, "아빠랑 축구 했어요"라고 대답해 아이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본인도 창피한 듯 씩 웃으며 혀를 내민다. 모두 신나고 즐거운 모습들이다.

원어민 교사와 섬 마을 학생들이 처음 만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GS칼텍스재단이 교육 환경이 열악한 전남 여수의 도서 지역 학생들을 위해 원어민 영어교사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

GS칼텍스재단은 이듬해 캐나다 출신 교사 2명을 뽑아 남면, 화정면, 삼사면 23개 지역 13개 학교에서 매주 두 차례씩 영어교실을 열었다. 올해도 존 맥클린톡씨와 뉴질랜드 출신 리처드 존(34)씨가 13개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평소 원어민 영어 교육에 목말라 있던 주민과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2007년 280명이던 영어교실 참가 학생 수는 2008년 310명, 올해 362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거리가 멀어 도저히 갈 수 없는 섬에서도 "수업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재단 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화태초등학교도 여수 군내리 항에서 40분 넘게 배를 타야 하는 외딴 섬의 작은 학교이다.

당초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계획했지만, 1,2학년생 학부모들이 "수업은 안 해도 되니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만 같이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허락했다. 개인 사정 때문에 영어수업을 못 받는 학생들에게는 방학 동안 서울 수유리 영어 캠프와 여수 금오도 예술 캠프에서 원어민 교사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원어민 영어 수업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섬 마을 학생들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다는 점이다. 화태초등학교 이태호 교장은 "어른들도 원어민 교사 앞에 서면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 아이들은 겁이 없어 자연스럽게 수업에 동화된다"고 전했다.

영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도 열심히 영어로 조잘조잘 재깔이기 때문에 금세 영어와 친숙해진다는 것이다. "일반 과목과는 달리 꼭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든 선생님이 친절히 대답해 주시니까 신나게 말할 수 있어요." 2학년 주유진(11)양의 설명이다.

맥클린톡씨도 "학생들에게 영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 번 여수 시내에 있는 영어 학원에 다닌다는 6학년 김찬희(13)군은 "학원에서는 딱딱한 분위기에서 시험 문제 풀 듯 영어를 배우지만, 여기서는 게임을 즐기듯 영어를 하니까 너무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꼭 영어 때문만은 아니다. 여수 금오도에 집을 얻어 살고 있는 맥클린톡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그의 집은 영어 수업이 끝난 저녁이나 주말에도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늘 북적거린다. 영어 공부를 더 할 욕심에 찾아오는 학생도 있고, 진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다툰 친구랑 어떻게 화해해야 할 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영어 선생님, 그리고 밖에서는 다정한 삼촌과 친구 역할까지 해내느라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건만 정작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수업이 끝난 오후나 주말에도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통에 쉴 틈이 없어요. 하지만 저를 믿고 따르는 친구들이 많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올해로 원어민 교사들이 섬을 방문한지 3년째가 되면서 마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GS칼텍스재단 박은필 과장은 "어르신들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만 봐도 원어민 교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차린다"면서 "먼저 다가가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교사에게 고기 잘 잡히는 명당 자리를 귀띔해 주거나, 맛난 먹거리가 생기면 종이 봉지에 담아 살며시 손에 쥐어주는 주민도 많다. 맥클린톡씨 역시 지난 크리스마스 때 직접 구운 빵과 과자를 나눠줘 학생과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키다리 이방인 선생님이 멈춰버린 듯 조용하던 섬 마을을 활기차고 정이 가득한 곳으로 바꿔가고 있다.

●GS칼텍스 사회 공헌 활동

GS칼텍스는 '에너지로 나누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 사회공헌 전담팀을 만들었고, 이듬해 8월에는 GS칼텍스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2015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100억원씩 출연, 총 1,000억원 규모로 공익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GS칼텍스는 특히 지역 사회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공장이 있는 여수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해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수 지역 중ㆍ고ㆍ대학생 5,159명에게 장학금 39억원을 지원했고, 지난해엔 학생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장학증서가 찍힌 통장을 지급했다.

또 섬 지역 10개 학교(분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습기자재는 물론 특별활동비, 급식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섬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랑의 집' 고쳐주기 행사를 진행했고, 판로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특산물 판매도 돕고 있다. 여수시 남면 연도마을에는 25인승 마을버스를 기증하기도 했다.

2012년 세계박람회를 여는 여수의 브랜드 가치와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1,000억원 이상을 들여 시전동 망마산과 장도ㆍ고락산 일대에 공연장, 전시장, 야외 자연학습장, 생태 산책로가 갖춰진 '문화예술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부지 매입과 실시 설계에 이어 연내 착공이 목표다.

독특한 아이디어의 사회공헌 활동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2005년부터 진행해 온 '소원 성취 릴레이'도 그 중의 하나. 지난해 12월 2주 동안 임직원과 가족 630명이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여수 등 7개 도시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다양한 소원을 들어줬다.

소비와 나눔을 접목해 '창조적 나눔 문화의 창출'이라는 취지로 월드비전과 KAIST 산업디자인학과와 함께 2005년 시작한 '자선상품 나눔' 사업도 눈에 띈다. 그 동안 USB, MP3 등을 GS칼텍스 주유소에서 판매해 얻은 수익금 7억원을 저소득가정 아동 83명의 교육 사업에 기부했다.

환경 지킴이 역할에도 힘을 쏟고 있다. 1994년부터 환경부와 함께 매년 환경미술대회를 열었고,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와 공동으로 'GS칼텍스-UNEP 여수청정해역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글·사진 여수=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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