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글로벌 '빅5' 업체간 대혈투가 시작됐다. 정부가 이번 달부터 국산 무선인터넷 플랫폼(운영체제)인 '위피' 탑재 의무를 해제함에 따라 노키아와 소니에릭슨 등 해외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국내 상륙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미국의 모토로라와 더불어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사상 처음 글로벌 '톱5' 업체들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내수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토종 업체들과 '위피'의 족쇄에서 벗어난 해외 업체들의 한 판 승부를 점쳐본다.
해외 업계, 2진급 모델 내세워 초반 탐색전
소리 없이 국내 거점을 마련한 해외 업체들은 일단 주력 선수가 아닌 '2진급' 모델들을 내세워 초반 탐색전을 벌이며 한국 시장의 반응을 살핀다는 전략이다.
한국노키아㈜는 지난해 말 무선통신장비 분야의 기업간(B2B) 거래에 주력해 왔던 국내 법인 조직을 새롭게 확대ㆍ개편한 데 이어 최근 KTF를 통해 3세대 네트워크인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과 유럽식(GSM)을 함께 지원하는 '노키아 6210s' 모델을 30만원대 후반에 선보였다.
앞서 노키아는 2001년 국내 휴대폰 시장에 진출했지만, 전략 부재로 토종 업체들의 집중 포화를 받으며 철수(2003년)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때문에 노키아로선 부담 없는 중저가 제품으로 조심스럽게 국내 시장에 접근하려는 모습이다. 조만간 SK텔레콤을 통해서도 출시 예정인 '6210s' 모델은 지난해 여름,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사양을 재구성한 제품이다.
올해 초 한국영업소를 마련한 소니에릭슨도 최근 인터넷이나 이메일 검색 등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컴퓨터(PC)용 쿼티(QWERTY) 자판을 채용한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X1'를 80만원대 초반에 출시했다. '브랜드 알리기'에 주안점을 둔 소니에릭슨은 불황기임에도 고가의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국내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제품 이미지를 각인하겠다는 복안이다.
토종 업계, 기존 점유율 '수성' 이상 무
해외 업체들의 적극적인 진출에도 불구, 국내 휴대폰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최신 제품을 선호하는 '얼리 어답터'(신제품 수용 속도가 빠른 사람)가 많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이미 나왔던 디자인에, 한 단계 떨어지는 사양의 해외 제품이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 달 25일 선보인 소니에릭슨의 '엑스페리아 X1'은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하루 평균 300대 가량의 개통 실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에 비해 인프라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애프터서비스(AS) 센터 문제도 걸림돌이다. 전국 구석구석에 직영 AS 센터점을 운영하는 국내 휴대폰 업체들과 달리, 해외 업체들은 해당 이동통신 업체를 통해 휴대폰을 전달 받아 수리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그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토종 업체들의 경우 휴대폰 판매 가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마케팅 비용(판매 장려금) 책정으로 기존 유통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해외 업체들이 이에 대항할 만큼 실탄을 책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 전문가들이 노키아 등의 공세가 '반짝' 효과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HMC투자증권 노근창 연구위원은 "해외 휴대폰 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은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최신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성향 등 국내 휴대폰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해외 업체들의 선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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