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요즘 출판계의 황금률 같다. 예술의 경지를 넘보는듯한 요즘 북 디자인은 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특히 소설, 평론집 같은 문학서들은 만화 풍의 일러스트, 강렬한 이미지가 담긴 사진을 활용한 표지와 예술적 감각의 띠지를 활용하며 '감수성의 혁명' 을 주도하고 있다.
■ 발랄한 만화 풍 일러스트가 대세
2005년 발표된 김애란(29)씨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 . 통통 튀는 상상력과 싱싱한 감수성을 결합한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 신인 기갈 현상에 시달리던 당시 문단에서 기대주로 떠오르며 1980년대생으로는 최초로 권위있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씨의 첫 소설집이다. 달려라>
내용도 내용이지만 김씨의 이력과 발랄한 작품 코드를 염두에 둔 만화 풍의 일러스트 표지도 화제였다. 표지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던 보수적인 출판사 창비의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확실히 최근 북 디자인의 코드는 카툰 풍의 일러스트다. 2008년 최대의 화제작이었던 김려령(38)씨의 청소년소설 <완득이> 의 표지에는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주인공이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완득이>
황정은(33)씨의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2008), 이기호 태기수 염승숙씨 등 젊은 작가들의 연작소설집 <피크> (2008)의 표지도 소녀 취향의 팬시상품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피크> 일곱시>
이같은 일러스트 풍 표지의 강세 현상은 영상세대인 20~30대 작가와 독자의 대두, 카툰 풍 디자인의 일본소설 유행, 일러스트 작가들의 인력 풀 확산 등이 맞물린 결과다. 북 디자인 역시 당대의 문화 취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등 파격적이거나 동화작품의 제목으로 어울릴 법한 표제의 소설들이 등장한 것도 이와 관련있다는 분석도 있다. 본드걸> 아내가>
북 디자이너 출신인 박상순(47) 출판사 뿔 대표는 "엄숙하고 권위적이었던 소설의 북 디자인이 최근 10년 사이에 가볍고 발랄해졌다" 며 "다소 치기어린 느낌이 든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앞으로는 발랄함과 엄숙함이 조화된 북 디자인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파격적인 사진 사용, 띠지까지 "예술이네"
일러스트 풍의 표지가 주종이지만, 최근에는 강력한 이미지의 사진을 전면에 사용하거나, 사진과 일러스트를 결합시킨 표지의 소설집, 평론집도 등장하고 있다. 소설집, 평론집 표지에 사진을 쓰는 것은 과거 같으면 "사진에세이집 느낌이 난다"며 작가와 출판사 모두 꺼렸던 관행이다.
사진작가 낸 골딩의 작품 '겨울 해변에서 웃고 있는 포월'을 사용한 김연수(39)씨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007), 역시 사진작가 톰 헌터의 'After the party' 를 표지로 활용한 신형철(33)씨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2008) 등은 이런 점에서 파격적이다. 몰락의> 네가>
단순히 홍보 수단으로 여겨졌던 띠지에 예술성을 부여해 표지의 일부분으로 활용한 책들도 나왔다. 신경숙(46)씨의 <엄마를 부탁해> 는 살바도르 달리의 '새벽, 한낮, 해넘이, 해질녘'을 그린 포켓 형태의 띠지를 두르고 있다. 엄마를>
타이포그라피를 활용한 표지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최인호(64)씨의 장편소설 <길> (2007)은 표제 하나로 표지를 만들었다.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세대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이 같은 북 디자인의 다양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길>
지난 1월 선보인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200호 발간 기념 특별판(전10권)은 이같은 북 디자인의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사례다. 키치적 일러스트,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잉크 사용, 자수 기법의 도입 등 파격적인 디자인의 이 특별판은 책 애호가들 사이에서 벌써 필수 소장 목록에 올랐다.
한국 북 디자이너 1세대로 꼽히는 정병규(65)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회장은 "전통적으로 책은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개성 강한 북 디자이너들의 등장으로 책이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대로 변모했다"며 "앞으로는 이미지 중심의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라피 중심으로 북 디자인의 중심이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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