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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야의 봄날을 거닐다… 고령 지산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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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야의 봄날을 거닐다… 고령 지산동고분군

입력
2009.04.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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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을 떠나 보내며 여러 문인들이 남긴 추도글 중 짙은 인상을 남긴 문장이 있다. "감사합니다. 추기경님이 가시고 나서 죽음이 훨씬 덜 무서워졌으니까요." 소설가 박완서씨가 쓴 이 글은 노 작가의 죽음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읽혀졌다. 사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만큼 무서운 게 있겠는가.

경북 고령군의 지산동 고분군에 올라섰을 때 군주의 무덤에 생목숨을 바치며 함께 누워야 했을 순장자들을 떠올렸다. 순장곽에 드러누워 돌문이 덮이고, 한 올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새까만 어둠에 갇혔을 그들의 공포를 떠올렸다. 그 캄캄함을.

대가야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등 여섯 가야로 이뤄졌던 가야연맹. 그 중 고령 땅을 중심으로 했던 대가야는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한 강력한 세력이었다. 562년 신라에 복속될 때까지 500년 이상 존속했던 나라다.

대가야의 숨결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지산동 고분군이다. 산 능선을 타고 200여기의 커다란 봉분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봉분으로 이뤄진 산자락이다.

지산동 고분군 산책의 시작점은 대가야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찬란했던 가야의 문화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꽃 향기 따라 언덕 하나를 오르면 44호 고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왕릉전시관에 이른다. 이 44호 고분은 국내서 처음 발견됐고 가장 커다란 순장 무덤이다. 30여명이 왕과 죽음의 길을 함께 했다.

봉분 가운데 왕이 드러누운 주석곽을 32개의 순장용 석곽이 둥그렇게 두르고 있다. 왕이 있는 곳엔 호위 무사 2명이 함께 누워 있었고, 작은 순장 석곽 하나에선 아버지와 어린 딸의 유골이 함께 발견됐다고 한다. 무사 농민 귀족 등 각계 각층에서 뽑힌 이들이 왕의 저승길을 동행하기 위해 묻힌 공간이다.

저세상에서도 똑같은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을까. 여러 사람과 함께 떠난 저승길에 군주는 정말 고독하지 않았을까. 죽은 왕을 따라 생죽음을 받아들려야 했던 이들은 과연 순순히 자신의 석곽 속에 드러누울 수 있었을까. 무수한 의문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왕릉전시관을 나와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의 고분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차분한 명상의 길이다. 크고 작은 고분들은 서로 겹치듯 붙어 있고 길은 무덤들 사이로 나 있다. 진달래가 벌써 빨갛게 피어나 바람을 따라 가냘픈 꽃잎을 하늘거린다. 1,500년 전 역사와 만나는 고분 산책로 위로 포실한 봄볕이 내려앉았다.

고분군에서 내려다 보면 대가야박물관 건너편으로 거대한 시설물들이 보인다. 올해 문을 여는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다. 6세기경 철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테마로 과거와 현재, 미래 고령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고대가옥촌에선 고대 집 모양 토기를 확대 복원한 모형을 통해 가야인의 의식주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유물체험관에선 우수한 제련술을 가진 대가야가 일본, 중국과도 교류했던 사실을 확인하다.

토기·철기방에서는 가야의 토기·철기 문화를 감상하고 직접 제작·체험할 수 있다. 숲길을 거닐며 퀴즈를 풀어보는 대가야 탐방 숲길, 대장간 화덕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마터 옹기굴, 임종체험관, 분재 전시실, 입체형상관 등도 들를 만하다.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대가야 체험축제' 개막(9일)에 맞춰 일반에 첫 공개된다.

고령=글·사진 이성원기자

■ 웅숭깊은 고택들… 고령 개실마을서 기품의 재발견

고령읍에서 멀지 않은 쌍림면 합가리에 아름다운 전통 한옥촌, 개실마을이 있다. 조선 초 영남사림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선산 김씨 집성촌이다. 점필재의 5대손이 이곳에 터를 잡고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마을은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종가답게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불천위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덕이 높거나 공이 커서 자손들이 그 신위를 영구히 모시도록 허락한 제사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제사는 4대 조상까지만 모시는 데 반해 영구적인 제사를 보장받는 것이어서 이를 허락받은 가문은 큰 영광으로 여긴다.

350년 전통을 지닌 마을인 만큼 개실마을엔 이야기거리도 많다. 마을 안에 조상을 모시는 재실이 다섯 개나 되고, 열녀비 효자비도 즐비하다. 마을의 중심은 점필재 선생 17대 종손인 김병식(76)씨가 꼿꼿이 지키고 있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라도 너무 예의 없이 돌아다니면 불호령을 내리는 호랑이 할아버지다.

짙푸른 대숲이 감싼 개실마을은 2002년부터 농촌체험마을로 일반에 활짝 문을 열었다. 90여명의 마을 주민 모두가 돌아가며 손님을 맞고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많을 땐 하루에 900명도 찾는다고 한다. 한과나 엿 등의 전통음식 만들기와 압화 만들기, 뗏목 타기, 짚풀 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고령의 대표 작물인 딸기 수확 체험이다. 1인 7,000원(단체 6,000원)을 내면 딸기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달콤새콤한 딸기를 맘껏 따먹고 또 한 팩씩 담아 가지고 갈 수 있다. 마을의 한옥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www.gaesil.net

■ 여행수첩/ 고령

● 고령에 벚꽃이 흐드러질 무렵이면 대가야 험축제가 흥겹게 시작된다. 올해 축제는 9일 시작해 12일까지 대가야박물관 일원에서 진행된다.

● 고분 발굴 현장을 탐방할 수 있고 딸기 수확 등 농촌 체험 행사도 다양하다. 아이들 교육용으로 진행되는 역사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대가야 금제 유물이나 토기 제작, 대가야 목선 제작, 돛 만들기, 바닷속 유물 발굴, 대가야 도장 제작 등을 해볼 수 있다.

● 축제 기간 전국 우륵 가야금 경연대회도 함께 열린다. 고령은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고 가야금을 만든 우륵의 고장이기도 하다.

● 고령 읍내와 개진면을 잇는 금산재길은 벚꽃길이다. 이달 중순까지 노란 개나리와 어울린 화사한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 고령읍 장기리 회천변에는 선사시대 새겨진 양전동 암각화가 있고, 쌍림면 용리 미숭산 기슭의 천년고찰 반룡사도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연장 연결되면서 고령 가는 길이 빨라졌다. 상주 김천 성주 등을 지나 내려오다 고령 JC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자마자 동고령 IC로 빠져나오면 고령읍이 가깝다. 대가야체험축제추진위 (054)950-6424 고령군 문화체육과 (054)950-6111

고령=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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