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일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필리핀, 우루과이 등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에 오른 4개국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는 같은 날 영국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조세피난처 규제에 대해 합의한 직후 나온 후속조치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갑작스레 이번 G20의 화두가 된 배경에는 선진국의 이해득실이 놓여 있다.
OECD 조세정책 담당 국장인 제프리 오웬스는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에 "13년의 노력 끝에 큰 발전을 이뤄냈다"고 말했다.유럽 각국은 오랫동안 조세피난처 규제를 주장해왔고 OECD 역시 1990년대부터 규제 움직임을 보였다. 이유는 물론 새어나가는 세금 때문이다.
조세피난처 규제를 주장하는 이익단체인 세금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산은 총 7조달러에 이르며, 이로 인해 선진국들은 연 1,80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의 60%가 조세피난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규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간 이렇다 할 규제가 없었던 것은 미국의 협조 부족 때문이었다. 특히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조세피난처가 테러자금 조달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규제의 명분을 얻었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반대했다. 더 낮은 세금을 둘러싼 경쟁은, 다른 경쟁들이 그러하듯이 전반적으로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후 유럽 정상들은 뜻을 이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규제안은 아니다. 선진국은 쏙 빼 놓은 채 규모가 작은 조세피난처에만 칼을 겨눈 셈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기준으로 내세운 '조세정보공유에 관한 국제기준준수' 규정만 봐도 그렇다. OECD에 따르면 조세피난처를 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로 ▦낮은 세금 ▦개인금융정보 보호 ▦투명성 부족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에 따른다면 각종 이익집단에 면세 혜택을 주는 미국, 영국 등도 조세피난처의 범주에 들어간다. 때문에 선진국은 빼놓은 채 작은 국가들만 건드리기 위해 추가로 내세운 규정이 정보 공유다.
중국, 스위스 등 대표적인 조세피난처가 블랙리스트에서 빠진 것만 봐도 이번 규제의 불완전함이 드러난다. 중국은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채 심사를 받아 기준 준수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당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은 OECD의 감사를 받겠다고 약속한 후 이름을 뺐다. 은행 비밀주의 전통을 고수해온 스위스도 지난달 G20 요구사항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후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면했다.
때문에 반세계화 단체들의 비판도 거세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의 존 슬래터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단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가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조치에 불과하다"며 "국제적인 틀을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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