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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자포니즘과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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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자포니즘과 '굿바이'

입력
2009.04.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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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일본이 문호를 개방했을 때, 유럽은 일본회화의 독특한 미학과 그것을 도자기, 부채, 차(茶) 등에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일상성에 매료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명한 색채, 평면분할, 강렬한 명암대비, 대담한 시선과 공간처리로 서민의 풍속을 담은 17세기 에도 시대에 유행한 우키요에(浮世畵)에 유럽 인상파 화가들은 열광했다. 모네는 벽을 우키요에로 채운 것도 모자라, 일본식 정원을 꾸며놓고는 수련을 그렸다. 평면효과를 시도한 마네, 400여장의 일본판화를 수집한 고흐, 강렬한 일본식 색채를 구사한 고갱도 예외는 아니었다.

▦1872년 프랑스 미술비평가 필립 뷔르티는 이를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불렀다. 회화에서 시작된 자포니즘은 조각, 공예, 건축, 생활양식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일본문화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대 상황도 잘 맞아 떨어졌다. 모더니즘의 기운이 팽배하던 당시 유럽 예술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시장과 무대에만 갇혀 있는 예술'이 아닌 독특한 정서와 미학으로 표현한 일상 속의 예술은 '동방으로부터의 빛'이었다. 유럽은 기꺼이 그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뜨겁고 강하다 한들 자포니즘도 바람이었다. 일본도 그것이 언젠가는 시들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왜 유럽이 열광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지 고민했다. 결론은'일본 것의 세계화'였다. 가장 전통적 소재와 양식, 정서와 색(일본 것)으로 가장 통속적인 것(세계화)을 담자는 것이었다. 지금 일본이 국가브랜드 육성전략으로 추구하고 있는'네오 재패네스크(신 일본양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류가 한차례 폭우로 끝난 것도 우리도 나라이름만 바꿔 외친 이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올해 아카데미는 일본영화 <굿바이> 에 외국어영화상을 안겼다. 이마무라 소헤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에 비하면 다키타 요지로 감독은 무명에 가깝다. 소재도 죽은 자를 씻기고 화장하는 일본식 염습(殮襲)으로 칙칙하다. 그런데 왜 아카데미는 찬사를 보냈을까. 5개월 만에 재개봉한 이 영화를 보며 몇 번이고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유를 알았다. 참 별난 풍경, 참 별 것 아닌 이야기에 담은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 가족의 소중함, 용서와 사랑의 힘이란 우리 모두에게 간절한 보편적 가치들 때문이다. 일본문화의 고집과 영리함이 부럽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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