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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지구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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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지구 동물원

입력
2009.04.0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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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

횡단보도를 건너다 옛사랑을 마주친 호랑이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타는 북극곰

마트에 장보러 가는 고양이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얼룩말

택시를 잡아타는 낙타

여자를 힐끗대며 신문을 읽는 박쥐

담배를 피며 전화를 거는 물소

돌아서는 펭귄

오래도록 하늘을 쳐다보다

눈물을 쓱 닦고

다시 걸어가는 기린

의자에 앉아 창살 밖 거리를 내다보다

낮잠 자는 인간

인간의 문명권 안에 들어오지 않은 지구의 면적은 넓지 않다. 그러므로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이 도시의 문명권에서 시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담배를 핀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우화는 종종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극명하게 삶의 지금 상황을 보여줄 때가 있다.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문명, 문명 속에 들어와 있는 자연.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점점 지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낮잠 자는 인간이 이 거대한 동물원에 들어와 있는 것은 정말 자연스럽다. 인간들이 건설해낸 수많은 도시들은 결국 동물원은 아닐른지.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곳을 우리는 사회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곳은 동물원일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낮잠을 자든 기린이 울다가 다시 걸어가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 문명의 한 풍경.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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