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총원 지음ㆍ정재서 옮김/황소자리 발행ㆍ208쪽ㆍ1만2,000원
중국의 서쪽 변방인 쓰촨성의 강가 마을. 의리를 중히 여기고 이익을 뒤로하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한 강기슭과 주변 경치와 어우러진 인가 등 마을은 무릉도원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평화롭다. 중국 전원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선총원(沈從文ㆍ1902~1988ㆍ사진)이 1934년 발표한 중편소설 <변성> 은 이 아름다운 마을을 무대로 청춘남녀들의 순정한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낸다. 변성>
주인공은 나룻배 사공의 손녀인 취취. 푸른 산과 푸른 물만 바라보고 성장한 발랄하고 귀여운 소녀 취취는 어느 단오절 축제날 뱃놀이 구경을 나갔다 선주의 둘째 아들 나송과 우연히 조우하고 야릇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취취와 나송의 상사(相思)의 마음은 꽃피지도 못한 채 비극으로 휘달린다. 우연히 취취와 마주쳤던 나송의 형 천보 역시 그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 동생의 마음도 취취에게 향해 있는 사실에 낙담한 천보는 긴 뱃길에 올랐다가 불의의 죽음을 맞고 취취는 가혹한 운명의 시험대에 오른다.
선총원이 그려내는 세 남녀의 사랑은 현대 청춘남녀들의 그것처럼 '쿨'하거나 되바라지지 않다. 나송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지만 "둘째 도령이 네가 예쁘다고 칭찬하던데"라는 사공의 말에 "할아버지 취하셔서 어디 잘 못 되신 거 아니에요?" 라고 발그레한 표정으로 되묻는 취취의 모습은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 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은근하고 티없다.
담담한 수채빛으로 그려지는 세 남녀의 사랑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중국의 전통사회와 중국인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다. 서구 열강들의 침탈에서 비롯된 20세기초 중국사의 격변기에 뤼신 같은 작가가 중국인을 '아큐'라고 꾸짖으며 계몽의 목소리를 드높일 때, 선총원은 "남을 어려움에서 구해내는 일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실되어 때로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을 정도"라고 중국인들의 본성적 휴머니즘에 주목했다.
그런 작가가 공산당 집권 후 문화혁명기까지 '입장이 없는 기녀작가'로 비판당하며 고초를 겪었던 것은 어찌보면 불문가지. 그러나 개혁개방과 함께 전통에 대한 자신감을 찾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은 '선총원 신드롬'에 빠졌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 후보로 오르내리는 한샤오궁 같은 작가들은 바로 선총원의 향토주의적 미학의 계승자로 꼽힌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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