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세계의 눈은 영국 런던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내달 2일 하루 여기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결과가 당면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처방은 물론, 향후 새롭게 짜여질 세계 경제의 틀과 역학관계를 엿보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1999년 시작된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달리 20 정상회의는 지난해 워싱턴 회동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G7 혹은 G8의 힘만으로는 전 지구를 오염시킨 미국발 거품을 걷어낼 수 없고 신흥공업국들의 협조와 동참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급하게 꾸며진 모임이다.
이해 얽힌 각국 주도권 다툼 치열
알려진 대로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거시경제 공조, 보호무역주의 배격, 금융시장 안정과 규제강화 , 국제금융기구 개혁, 개도국 경제회복 지원 등인데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지난달 중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먼저 만나 현안을 사전 조율했으나 두루뭉술한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실행력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단적인 예다.
세계가 공조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모든 보호주의에 맞서 싸우며 금융시장 규제와 개혁을 강화하는 것이 해답인 것은 알지만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미국과 유럽, 중국과 서방 사이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히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서다.
미국의 도움으로 G20 정상회의에 동승한 우리나라의 입장은 한층 더 미묘하다. 재정지출-자유무역-금융규제의 세 축을 놓고 미국과 유럽이 벌일 신경전에서 선뜻 한 쪽에 발을 담그기 어렵다. 재정지출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전적으로 미국을 지지하지만 보호무역 저지전선에서 유럽의 지원을 얻어내려면 금융규제 분야에서 유럽 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줄타기를 하려면 치밀한 전략과 세심한 자세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회의 참석차 오늘 출국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도 G20 내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잘 헤아려 과도한 욕심을 내지 말고 '솔직하고 믿음 가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워싱턴 회의 때 이 대통령이 제안한 재정정책 확대와 보호무역주의 동결(standstill) 문구가 정상 합의문에 포함된 것에 고무돼 이번에도 '주도적' 역할 운운하지만 회의의 성격과 구조를 아는 전문가들이 보면 민망한 소리다.
우리가 G20 정상회의에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교역의 급격한 수축을 초래할 보호무역 추세에 확실하게 제동을 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실자산 늪에 빠진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속히 정상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자국 산업과 노동자들을 우선하라는 정치적 요구가 거센 데다 금융산업의 역사적 배경과 맞물린 이념논쟁과 윤리 공방 탓에 부실자산 처리의 일률적 잣대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정부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이 대통령의 자유무역 철학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리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 대통령이 기고한 부실자산 처리의 6가지 원칙이 게재된 것이 대단한 일인 양 얘기하지만 말 그대로 아전인수다. 이 대통령은 또 엊그제 FT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역이나 금융 장벽을 쌓는 나라를 공개해 망신을 주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나 공감보다는 되레 뜬금없다는 인상을 준다.
정부는 우리가 G20 의장국단이어서 나름의 발언권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전문가들 눈에는 우리의 몫이나 존재감 이상으로 서두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비치는 것 같다. 구속력 없는, 느슨한 협의체 성격의 이런 회의가 통상 그렇듯이 결론은 저마다 편한 해석이 가능한 외교적 수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솔직ㆍ성실ㆍ신뢰로 친구이미지를
그렇다면 우리가 기여할 역할과 얻어낼 이익은 분명해진다. 실무작업반이 작업 중인 공동성명 초안의 행간을 잘 읽고 미국과 유럽, 중국, 개도국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건설적ㆍ실용적 책임에 치중함으로써 성실하고 균형 잡힌 친구의 이미지를 심는 것이 그것이다. 국내든 국외든 매사 주도적 역할을 해야 성이 차는 우리 지도자들의 습성도 이제 떨쳐 버릴 때가 됐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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