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이었던 3월3일 밤 국회 본회의장. 여야는 국회의장석 주변에서 날이 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날 여야가 합의한 대로 경제관련 쟁점법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이날 본회의에서 합의는 무시됐다.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세부 이견때문이었다. 여야의 대치로 이날 처리키로 했던 은행법, 토지임대부 분양주택공급촉진특별법(반값 아파트법) 등 14개 법안은 끝내 회기인 자정을 넘겨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야가 하루 만에 스스로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
여당은 야당의 악의적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때문이라고 공박했고, 야당은 여당이 은행법을 정무위에서 강행 통과시켰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이 장면은 정치권의 팔로어십(followership) 부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정치에서 팔로어십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합의 정신을 존중하며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구현된다.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를 무작정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 이 같은 건강한 팔로어십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내가 옳다'는 우격다짐과 아전인수만 판친다.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냉소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 사회 리더격인 정치권부터 팔로어십을 보여줘야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팔로어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조언은 그래서 나온다.
정치권이 연출한 심각한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다. 국회에서의 폭력충돌은 가장 극적인 예다. 지난해 말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민주당은 회의장 문을 부수기 위해 해머와 전기톱을 동원했다. 그로부터 꼭 4년전인 2004년 말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했다.
상생을 외면하고 법안을 강행처리 하려는 여당과 이를 육탄저지 하려는 야당의 충돌은 이미 국회의 관행적 풍경이 돼버렸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다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기본원칙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며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야당은 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석 구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의 입장이 뒤바뀌면 말과 입장을 완전히 바꾸는 것 또한 팔로어십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민주당이 여당일 때 타결한 한미 FTA에 대해 조기비준을 주장하다, 야당이 되면서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 또한 야당일때는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다가 여당이 되니 급해졌다.
연말연초 법안전쟁 와중에서 한나라당은 언론관련법 등 쟁점법안의 국회 상정을 거듭 주장하며 이를 저지하는 민주당을 맹비난했지만, 한나라당 역시 야당때인 17대 국회때는 국보법 폐지안 등 숱한 법안들의 상임위 상정을 저지한바 있다. 모두가 자신의 과거는 침묵하면서 정파적 시각에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팔로어십의 기본인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헌법에 규정된 예산안 처리 시한(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12월2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아예 이를 당연시한다. 국회 의정자료집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킨 것은 2002년 단 한번 뿐이다. 1989년부터 최근 20년 간을 따져도 불과 5번이다. 예산안을 정치공방의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114조 2항에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당론투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우리 사회 전반의 팔로어십을 훼손시킬 수 밖에 없다. 한양리더십센터장인 송영수 한양대 교수는 "팔로어십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공감대 형성"이라며 "정치권이 팔로어십을 내팽개치고 있는데 큰 틀의 팔로어인 국민에게 제대로 된 공감대와 팔로어십을 기대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지도자의 팔로어십은 그래서 더 한층 중요하다. 송 교수는 "정치권부터 상호 신뢰를 회복해 원칙과 질서, 룰이 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래야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서 전 국민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특히 리더십(leadership)과 팔로어십의 조응을 중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동전의 양면 같은 개념"이라며 "정치지도자들이 권력과 힘이 아닌 대화와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자연스런 팔로어십이 따라간다"고 강조했다.
대화와 설득의 리더십은 곧 팔로어십에 다름아니다. 이내영 교수는 "정치인들의 리더십은 곧 팔로어십과 같은 말"이라며 "정치인들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길 때 이는 곧 건강한 팔로어십을 만들게 되고 이게 진정한 리더십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 정치분야 팔로어십 해외 성공사례
역사적으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국가는 구성원간 대화와 타협, 참여와 협력을 통해 팔로어십을 적극 발휘했다.
'강소국' 네덜란드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네덜란드는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급감했다. 청년실업률은 30%로 치솟고, 81년~83년 사이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고임금 고비용 고실업 저성장의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증세가 완연했다.
이에 82년 9월 집권한 루드 루버스 총리는 공무원 급여와 복지지출을 동결하고 83년에는 3.5%씩 삭감했다. 정치권의 노력에 화답해 노사는 바세나르 협약에 합의,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했다. 노조는 9%의 실질임금 하락을 수용했고, 기업은 노동시간을 5% 단축해 고용을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노사는 민간 협의기구인 노동재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부 정책을 뒷받침했다. 86년 공공노조가 전후 최대규모의 파업으로 정부에 저항했지만 파장이 크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민간의 자율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92년 또 위기가 찾아왔다. 세계적인 전자회사 필립스 등 주요 기업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 92~94년 제조업 일자리의 10%가 줄었다. 이에 정치권은 94년 좌ㆍ우 연합정권을 결성해 정부지출 삭감, 규제완화, 민영화 등 바세나르 협약 때보다 과감한 조치를 실시했다. 국민들도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을 늘리고 복지혜택 감소를 받아들이는 등 적극 호응했다. 이후 GDP 성장률이 연평균 3%를 넘는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져 9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기적을 일궜다.
당리(黨利)보다 국정을 앞세운 통일아일랜드당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아일랜드는 75년과 82년 두 차례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그 결과 86년 GDP 대비 정부부채가 111%에 달했다. 집권 통일아일랜드당은 재정지출 삭감을 시도했으나 제1야당인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반면 87년 집권한 공화당은 이전 정부의 긴축예산안을 그대로 추진했다.
여소야대 정국이었기에 통일아일랜드당이 반대하면 무위로 그칠 상황이었지만 앨런 듀크스 당수는 "재정개혁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노사도 임금인상 자제를 골자로 한 국가회복 프로그램을 수용, 아일랜드가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비견되는 '켈트 호랑이(Celtic Tiger)'로 불리며 90년대 유럽의 강소국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됐다.
독일은 66년 사민당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기민당과 대연정을 구성,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며 적극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 노조, 전문가간 합의주의 전통이 정착하는 계기가 됐고, 독일의 경제부흥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 공화당은 33년 민주당 루스벨트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뉴딜법안에 대해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하지 않고 국익의 관점에서 수용, 대공황의 위기를 수습하는데 동참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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