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가 여의도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정치인과 돈의 질긴 관계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검은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후진적 악순환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느냐는 개탄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17대 국회를 거치며 정치권이 깨끗해졌다고 나름 자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근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않은 주제이지만 전문가들에게 가능한 솔로몬의 해법을 들어보았다.
정치인과 검은 돈의 유착은 기본적으로는 법을 지키지 않은 정치인의 잘못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 탓이나 남의 탓을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이상에만 치우쳐 현실과 동떨어진 법의 개선을 언급했다. 바로 정치자금법의 현실화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현실정치에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데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너무 좁혀 놓았다"며 "투명한 통로를 확보한다는 전제 하에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현행 법은 투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다 보니 자율성과 시장성을 무시한 면이 있다"며 "예를 들면 후원금 모금 한도를 정해 놓은 것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2004년 초 만들어진 일명 '오세훈법'이 기본 뼈대로 당시 개혁입법이라는 환영도 받았지만 비현실적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당시는 이른바 '차떼기' 등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비난 여론이 비등했던 때라 여야의 선명성 경쟁이 극에 달했다. 때문에 지나치게 이상에만 치우쳤다는 평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엄격한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후원금 한도 현실화 ▦법인ㆍ단체의 후원 허용 ▦후원회 모금 행사 허용 등을 정치자금법 완화의 구체적 방법으로 거론했다. 합법적 통로를 좀 더 확대해 정치인들이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논리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박연차 리스트 문제가 불거진 것은 제도 때문이 아니다"며 "오히려 지금은 법 적용을 엄격히 해야 할 때이지 섣불리 정치자금법 완화를 말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좀 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 권력구조 형태가 정밀하게 시스템화 돼있기 보다 지나치게 개인화 돼있는 게 문제"라며 "권력자의 측근, 실세에게 검은 돈의 유혹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모든 분야를 세밀하게 시스템화 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로비스트'의 합법화도 하나의 예방조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투명성만 보장된다면 미국처럼 로비스트를 양성화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은 돈의 고리가 되는 음성적 불법 로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로비스트를 고용할 수 있는 경제적 강자와 그렇지 못한 약자간 불평등이라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선결돼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종국적으로는 정치인의 의식과 자세가 문제라는 평가도 많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제도가 아니라 정치인의 양심과 자세의 문제"라며 "후원금 한도를 늘린다고 부정부패가 없어지나. 돈을 앞세우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고 사업을 하라"고 꼬집었다. 임종훈 홍익대 교수는 "의원 본연의 입법활동보다 연줄 쌓기를 중시하는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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