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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자살인'의 황정민/ "연쇄살인이란 어두운 소재…오히려 경쾌해지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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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자살인'의 황정민/ "연쇄살인이란 어두운 소재…오히려 경쾌해지려 했죠"

입력
2009.04.0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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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황정민의 안면근육이 많이 풀려보였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아 시절은 하수상하기만 하고, 돈만 보고 덜컥 맡은 사건이라는 게 파고들수록 피냄새와 욕망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그럼에도 영화 '그림자 살인'의 주인공 홍진호는 이마에 세줄 금을 긋기보다 입 꼬리를 슬쩍 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탐정 추리극을 표방하는 '그림자 살인'은 연쇄살인사건과 그 추악한 이면을 추적하는 영화.진지하고 심각하고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황정민은 "오히려 더욱 유들유들 해지려고 했고, 가볍게 보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영화, 저까지 무게 잡으면 관객들이 얼마나 지루해 하겠어요. 애초에 스릴러를 표방했던 것도 아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추리극을 생각했으니 밝고 경쾌하게 가려고 했죠."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답게 황정민은 '그림자 살인'에서도 자신의 몫을 해낸다. 구한말 잔혹극과 코믹한 추리극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그림자 살인'은 그를 통해 무게 중심을 잡는다.

그는 영화 제작과정에서도 적잖은 '입김'을 발휘했다. 연쇄살인 사건을 푸는 한 단서로,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소재인 '모르히네'(모르핀)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다같이 공동작업식으로 영화를 만들어갔죠. 여러 사람의 더듬이가 모여서 뭔가를 만들어갈 때 느낀 정신적 포만감이 참 좋았어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역량이었던 듯해요."

그는 전철을 타고 도망치는 범인을 인력거를 타고 뒤쫓는 장면을 찍다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앞에서 달려오는 전철과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인력거의 바퀴가 부딪치면서 그는 2m 정도를 비행한 끝에 바닥에 팽개쳐졌다. "등부터 떨어졌으면 아마 척추를 다쳤을 거예요. 꽤 큰 사고였어요. 비스듬하게 떨어져서 다행이죠."

그래도 그날 촬영을 중단하진 못했다. 어느덧 그도 현장에서 형보다 동생들이 훨씬 많은 위치가 됐기 때문이다. "하루 촬영 못하면 그 돈이 얼마에요. 책임감 때문에 아파도 꾹 참아야죠. 그래도 다치는 것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힘겨워요. 내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관객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것인지 그런 생각이 더 힘들어요."

그러나 그는 "흥행은 절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아예 흥행 여부는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고도 했다. "흥행은 관객들의 몫이에요. 그걸 제가 어찌 좌지우지 하겠어요. 저는 촬영 끝나면 모든 것을 잊어먹어요. 흥행이 안 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분명한 건 영화를 잘못 만들었다는 거죠. 최선을 다했다 해도 역량이 결국 못 미쳤다는 거죠."

그의 다음 행보는 여의도다. 4월 29일 방송을 목표로 촬영 중인 KBS2 수목 드라마 '식스먼스'(가제)가 그의 다음 정착지. 그에게 첫 TV드라마 도전이다. 장르도 그에겐 생소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코미디로 김아중과 호흡을 맞춘다.

우연하게 국내 최고의 여배우와 계약결혼을 하게 되는 평범한 우체국 직원 역을 맡았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처럼 착하고 순박한 캐릭터"라 "어떻게 연기할지 나 스스로도 무척 궁금하다"고 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같이 인생에 페이소스를 지닌 인물인 듯 해요. 시청자를 웃기면서도 울릴 수 있는 그런 역할이 요즘 드라마에 없잖아요. 그런 역을 한번 하고 싶다는 욕심, 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저에겐 중요한 작품이에요."

■ 리뷰/ 영화 '그림자살인'

배경은 구한말. 떼인 돈 받아주고, 사람 찾아주는 일을 호구지책으로 삼은 홍진호(황정민)와 주워온 시체로 해부도 마다 않는 열혈 의학도 광수(류덕환)의 의문부호 가득한 모험담을 담았다.

광수가 해부한 시체가 유력한 집안의 자제이고, 그 시체가 연쇄살인사건 해결의 단초라는 내용이 전개되면서 영화는 거대한 음모를 향해 전진한다.

'그림자 살인'은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역사적 부채의식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구한말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캐릭터 창조를 위한 재료로만 삼는 등 경쾌한 상업영화의 방향을 꿋꿋이 지켜간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본 얼티메이텀'을 창의적으로 끌어들인 건물과 건물을 넘나드는 액션과 인력거 추격 장면 등 눈길을 잡는 대목도 여럿 있다. 구한말 한성을 세밀하게 재현해낸 미술도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스릴러가 아닌 탐정추리극을 표방했다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서스펜스를 배제했다. 최대 약점이다. 추리극의 핵심인 '누가 왜'라는 단서를 너무나 쉽게 알리는 과정도 맥이 풀리게 한다. 복잡한 퍼즐?풀고 난 뒤의 쾌감을 기대하긴 어려운 영화다.

'그림자 살인'이 충무로 데뷔작인 박대민 감독은 "관객들 생각보다 반 발자국 정도만 앞서가려 했다"고 말했다. 요즘 관객들이 아무리 무겁고 복잡한 내용을 싫어한다지만 탐정추리극에서 원하는 것은 난마와도 같은 상황을 풀어가는 두뇌유희 아닐까. 반 발자국이 아니라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영화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2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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