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칼끝'이 끝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형국이다. 박연차(구속기소)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50억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박연차 리스트' 연루 의혹도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말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모씨에게 50억원을 전달한 단서를 최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코앞에 둔 시기로, 박 회장이 태광실업의 홍콩법인인 APC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 685억원 가운데 일부를 수 차례에 걸쳐 연씨 측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구속기소)씨의 첫째 사위인 연씨는 부인과 함께 인터넷 정보서비스 벤처회사를 운영하다 지난해 초 서울에 투자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2003년 박 회장이 설립한 신발제조 소프트웨어 업체의 이사로 6개월간 근무하기도 하는 등 박 회장과는 '특수관계'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자신도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며 "연씨가 이 돈을 받아 사업에 투자한 것인 만큼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박 회장은 노건평씨와 절친한 사이로 노 전 대통령과는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박 회장 불똥'이 노 전 대통령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이는 해명이다.
하지만 박 회장이 2007년에도 노 전 대통령 측에 '(퇴임하고 나면) 홍콩계좌에서 50억원을 꺼내 대통령 재단을 만들 때 사용하라'는 제안을 한 사실까지 감안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연씨가 받은 50억원의 최종 목적지는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증폭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을 대비한 '보험용'으로 연씨 측에 거액을 건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아직까지 말을 아끼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 등으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은 적도 없고, 홍콩에서 받은 APC 계좌자료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홍콩당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한 만큼, APC계좌의 전체 자료가 확보된 뒤에야 자금의 성격 파악이 가능하며 그 이후에야 본격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금이 건네진 시점과 규모, 전달 경위 등을 종합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의 50억원'이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면서, APC계좌는 이번 수사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만일 APC계좌를 통한 불법자금 수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으로선 치명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자금의 전달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직무관련성 여하에 따라 '뇌물 수수'에 해당할 수도 있어 그 충격은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