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8월 기능올림픽 최연소 국가대표, 서울 로봇고 3년 김원영·최문석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8월 기능올림픽 최연소 국가대표, 서울 로봇고 3년 김원영·최문석군

입력
2009.03.30 00:02
0 0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로봇 특성화고등학교인 서울 로봇고. 29일 오전 강남구 대모산 기슭의 이 학교 3층 모바일 로봇실에서는 학생 2명이 휴일도 잊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새겨진 유니폼의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8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로봇제어와 3년 김원영(17), 최문석(17)군이다.

가로, 세로 4m5㎝ 크기의 정사각형 코트에서 중간중간 끊어진 테이프를 로봇을 움직이는 '라인 트레이싱'을 연습하던 이들이 갑자기 로봇 작동을 멈췄다. "(경로에서) 15㎝나 벗어났잖아. 티칭을 제대로 해봐." 원영군의 주문에, 코트 밖 컴퓨터에서 작업하던 문석군이 "센서를 보정해야겠는걸"이라고 대꾸한다.

잠시 후 지름 25㎝, 높이 25㎝ 원통형 로봇은 적외선 센서가 켜지며 다시 코트 바닥에 검은 종이테이프를 붙여 표시한 경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영, 문석군은 고2 때인 지난 2월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둘 다 1992년 1월 생으로 이번 대회 국가대표 44명 중 최연소다. 문석군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지만 아직 나라를 대표해 나간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이 도전하는 '모바일 로보틱스'(Mobile Robotics)는 로봇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한 뒤 무선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겨루는 것으로, 올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막내들이 '1호 금메달' 획득의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첫 출발을 잘해서 다음에 출전할 선수들을 위한 밑거름이 돼야죠." 원영군이 먼저 점잖게 입을 뗐다. 문석군은 한 발 더 나가 패기 넘치는 출사표를 던졌다. "우승 확률 99.8%예요. 너무 자만하면 안되니까, 0.2%는 남겨둬야 겠죠?"

문석군의 자신감은 괜한 것이 아니다. 둘은 재작년 10월 로봇영재반에서 만나 '짝꿍'이 됐다. 호흡을 맞춘 지 7개월째인 지난해 4월 국내에서 처음 열린 모바일 로봇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22개팀 중 1위를 차지했다.

정밀 주행, 라인 트레이싱, 퍽 모으기, 미로 주행 등 네 과제에서 100점 만점에 94점을 얻었다. 2위와 무려 22점차였다. 지도교사인 김인목 로봇제어과장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때까지 집에 가지 않는다. 프로그래밍 능력은 물론, 열정도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서로 척 봐서 표정이 안 좋다 싶으면 프로그램을 수정해요. 말 많이 할 필요도 없어요." 문석군 말마따나 둘은 말 없이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2인1조로 겨루는 모바일 로보틱스 종목 특성상 유리한 면이다.

지난해 12월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는 안양에 사는 원영군이 서울 어린이대공원 근처 문석군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선발전을 앞두고 너무 긴장한 원영군이 "자신이 없다"며 대학 진학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며 마음을 다잡게 한 것도 문석군이었다.

둘의 로봇 사랑은 지극하다. 남자아이치고 어린 시절 로봇 장난감에 빠져보지 않은 이 없겠지만, 이들은 그저 갖고 노는 게 아니라 뜯어보고 직접 만들어도 보며 안목을 키웠다.

중학교 때 로봇 대회에 6차례나 출전한 원영군이 로봇고에 지원할 당시 통학하려면 안양 집에서 지하철을 네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현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은 현재 서울공고에 마련된 '기능올림픽 선수촌'에서 합숙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12시간은 로봇고에서 연습에 매진한다. 대당 1,250만원 하는 로봇을 벌써 2대나 과열로 고장 냈다.

밥 먹으면서도 수치 테스트를 하기 위해 로봇을 켜두는 등 하루 17시간씩 '혹사' 시킨 결과다. 지금 연습하는 2대 중 한 대도 "비실비실한 게 위험하다"고 했다.

최근 경기 불황은 이들의 집도 피해가지 않았다. 문석이네 치킨집은 얼마 전 문을 닫았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원영군 아버지도 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모바일 로보틱스 1인자가 되겠다"는 그들에게 그늘은 없다.

애창곡인 빅뱅의 '붉은 노을'을 부를 땐 평범한 소년들이지만, 로봇 얘기로 옮아가면 미래산업까지 챙기는 성숙함이 묻어난다.

"모바일 로봇은 오픈 플랫폼이에요. 로봇 팔에 무기를 달면 군사용이고요, 청소기를 달면 가정용품이죠. 미래에 어떤 일이든 사용 가능하다는 말이에요."(원영군) "한국 로봇 수준이 세계 4위라고는 하지만, 산업용 로봇에 국한된 로봇을 가정용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죠."(문석군)

한 조사에 따르면 전문계 고교생의 80%가 대학 진학을 원하고 있다. 기능인이 푸대접 받는 현실도 안다. 그러나 둘은 대학 진학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도 고려해야겠지만, 좋은 직장에 취업해 모바일 로보틱스 분야의 1인자가 되는 게 우선"이란다.

24전 15승. 1967년 16회 대회부터 국제기능올림픽에 참여한 한국의 화려한 성적표다. '기능코리아'의 전설을 이어갈 막내들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