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족들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온 식구가 모여 일주일은 먹어도 좋을 만큼의 음식을 싸들고 여행을 다니곤 했다. 이번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가족과 작은 아버지 댁 가족이 거반 모였다. 급한 사정이 있어 빠진 사람이 있는데도 모이고 보니 열 네 명이나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몇 명이 부엌을 서성이는 동안 나머지 가족들은 멀뚱멀뚱 베란다 앞까지 밀려든 바다를 보거나 독채로 된 빌라 주변을 산책했다. 도시를 떠났다는 안도감과 도시에 두고 온 일거리를 걱정하며 짐처럼 꾸려온 무거운 마음이 뒤섞인 식구들의 얼굴은 낯선 풍경 속에서 금세 심심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모두 말을 잃은 가운데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만 왕왕 떠들어대고 있었다. 숙소 안에는 잔치를 벌일 듯 다양하게 싸온 음식들을 굽고 찌고 삶는 냄새가 텔레비전 소리에 섞여 퍼졌다.
한바탕 소동을 피우듯 점심을 먹고 나자 식구들 모두 '이제 뭐 하지' 하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서로를 보았다. 오후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식구들 수만큼 의견이 나왔다. 이제 갓 말을 배운 조카까지 멀다, 춥다, 하면서 말을 보탰다. 식구마다 가고 싶은 곳도 달랐고 하고 싶은 것도 달랐다. 가기 싫은 이유도 달랐고 가야 하는 이유도 달랐다. 다른 여행이라면 동행을 배려해 참았을 것을 참지 않고 얘기했고 우겼고 졸랐고 따졌다. 편하고도 익숙한 가족 여행인 탓이었다. 가족끼리 이렇게 뜻이 안 맞으니 경제가 이 모양 아니냐는 뜬금없는 탄식이 이어졌다.
지난번 여행에서도 왈가왈부하다 결국 성에 안 차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가자고 주장했던 사람만 공연히 미안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왜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도 가족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듯, 격조해질까 두려운 듯, 여행을 오고 마는 것일까 회의가 들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짓은 이제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무렵 민주주의 원칙대로 하자는 말이 튀어나왔고, 다수의 희망대로 온 식구가 노천 온천에 가기로 했다.
온천은 물론이고 대중탕이라면 질색하는 나를 비롯한 몇 명은 결사반대를 하면서도 어렵게 모인 의견이니 따르라는 어른들의 말에 할 수 없이 동행했다. 다녀와서는 웃음이 났다. 가자고 우겼던 식구들이나 가기 싫다고 투덜댔던 식구들이 막 목욕을 마쳐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젖은 머리로, 각각 중년과 노년을 지나고 있는 사촌을, 자매를, 부모님을 몰래 몰래 짠한 마음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또 한바탕 어수선하게 모여 저녁을 먹고 다시 몇 명은 밤바다로, 밤의 해안도로로, 근처 산책로로, 숙소 거실에 차려놓은 술상 앞으로 흩어졌다. 돌아와서는 피곤에 겨워 포갠 채로 잠이 들었다.
부산한 아침에도 역시 행선지 문제로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다가 누군가는 가고 싶지 않았던 추운 바닷가로 모두 함께 갔고, 누군가는 가고 싶지 않은 수목원을 모두 함께 갔고, 누군가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메뉴로 모두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앞에서 각자의 차에 나눠 타며 식구들은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인사했고 다음 계절에 또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시끄럽던 가족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차 안이 너무 고요해서 갑자기 외로워졌다.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잘 것 같았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번 여행지에서도 비슷하게 어수선한 일들이 있을 테지만, 그런 떠들썩함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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