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로 여는 아침] 그 병원 앞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로 여는 아침] 그 병원 앞

입력
2009.03.30 00:02
0 0

이윤학

비오는 밤에

기적 소리를 듣는 병실들

형광등 불빛들, 넓은

창문 속에

목련이 활짝 피어난다

목련이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

그걸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신음 소릴 간직하고

있는 것인가

외면하려 해도 한 번은

슬쩍 쳐다보게 되는 곳

하지만 이제는, 창백한

저 꽃과 향기는 지나간 것이다

비 오는 밤에

기적 소리는 뿌리치며 지나간다

그리고 형광등 불빛들

무엇인가 담고자 노력하는 유리 창문들

신음 소리만큼 긴 기도문을

들어본 적은 아직 없다

이렇게 경제 사정이 어두운 시절,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기적 소리란 기차에서 나는 소리겠지만 병원의 창문에 선 사람들은 정말 구원같은 기적을 바란다. 비는 오는데 기적처럼 활짝 피어나는 목련, 그리고 순간처럼 져버리는 목련.

신음 소리만큼 긴 기도문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고 시인은 어눌하게 중얼거린다. 밤에 병원 복도에서 서성거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어눌한 중얼거림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고 들어올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 긴 기도소리도 사라질 것이다. 병원 창문마다 들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병원 창문 수보다 훨씬 많을, 많은 이들의 운명이 기적과 마주치기를 바라며 신음 소리를 긴 기도문으로 받아 적은 이 시를 읽는다.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