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취임후 첫 유럽순방… 8일간 5國도는 강행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69일만에 첫 해외 순방에 나선다. 8일 동안 5개 국가를 도는 빡빡한 일정이다. 지난달 중순의 캐나다 방문은 당일치기였고, 부인 미셸 여사도 동반하지 않은 실무방문 성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31일 워싱턴을 출발, 제2차 주요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가 열리는 영국 런던으로 가 4월 1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다음날 G20 회의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세계 각국의 공조방안을 협의한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지도자와 개별 회담도 갖는다.
이어 프랑스와 독일 접경도시인 스트라스부르(프랑스)와 켈(독일)을 방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동하고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60주년을 기념해 NATO 정상회담에 참석, 대서양 양안의 군사동맹 관계를 재점검한다. 이 회의가 끝나면 다시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인 체코로 이동해 '미-EU 정상회의'를 갖고 마지막 일정으로 이슬람 국가인 터키를 방문하는 것으로 순방을 마무리한다.
일정에서 보듯 오바마 대통령의 외유는 굵직한 이벤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만큼 그에게 쉽지 않은 '외교 데뷔전'이 될 것이란 평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일방외교를 청산하고 협력의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막상 경제위기 극복 방안이나 아프가니스탄 전략, 미사일방어(MD) 문제 등 각론에서는 어느 것 하나 협상 파트너들의 지지를 끌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은 이끌기 위해서 뿐 아니라 듣기 위해 영국에 간다"고 말한 것이 미국 정부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가장 주목되는 현안은 경제문제의 글로벌 해법 도출과 아프간 내 NATO의 역할 확대 문제로 압축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G20 회의와 개별 정상회담에서 과감한 정부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미국식 처방을 해법으로 내놓을 예정이지만 유럽 등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 "미국은 더 이상 추종해야 할 경제모델이 아니며, 미국이 처방을 제시할 입장도 아니다"라는 반발정서가 강한데다 유럽은 미국식 경기부양책을 채택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안전망이 확고하게 구축돼 있고, 인플레에 대한 거부감이 미국보다 훨씬 큰 것이 배경이다. 아프간 증파 문제도 미국 정부는 당초 NATO 유럽 회원국의 추가 파병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유럽의 반발이 심상찮자 추가 파병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으로 몸을 낮췄다.
NATO의 아프간 증파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이란 핵문제, 러시아와의 군축 및 동유럽 MD 협상, MD 유예 가능성에 대한 체코 정부의 안보 불안감 해소 등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는 매우 불투명하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미국이 어떻게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는 미묘한 시기"라며 "(이번 순방은)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초대장"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 런던·베를린 곳곳서 수만명 항의집회·행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반대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시위자들은 경제 위기의 원인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제공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떠맡고 있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G20 정상회의를 닷새 앞둔 28일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3만5,000여명이 집회를 열고 시가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우리는 금융 위기 해결에 돈을 내지 않겠다'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일부는 다우닝가 총리실을 앞을 지나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AFP통신은 "노조, 시민단체, 환경운동단체가 시위를 주도했다"며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정치 지도자를 향해 극도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영국 노조회의의 브랜든 바버 사무총장은 "G20 정상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든 우리가 알 바 아니다"며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그간 자신들이 무엇을 해왔는지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날 각각 1만5,000여명이 시위와 거리 행진을 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에서도 수천명이 집회를 열었다. 독일의 시위대는 '당신들이 직접 돈을 부담하라' '부유층에 세금을 물려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으며 일부는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가 거세지자 정치 지도자들은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시위대의 요구를 경청하고 있다"며 "G20 정상회의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시위대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위기를 수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AP통신은 "시위가 G20정상회의 참석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이 G20 회의에서 주된 의제로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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