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센티브를 통해 이 제도의 확산을 성급히 앞당겼다. 입학사정관제는 원칙적으로 대학이 교육목적 달성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대학자율화 시각에서 봐야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교육비 절감의 묘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학사정관제만으로는 사교육비 절감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입학할 대학을 추첨으로 배정하는 터무니없는 정책이나 내놓으면 모를까, 대입제도를 조금 바꾼다고 줄어들 사교육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제 사교육 해소 못해
사교육에는 학교(교사), 학생, 학부모, 사설학원(개인교습)이라는 네 이해당사자 집단이 있다. 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잃은 것도 있지만, 이제는 이를 스스로 포기하기 어려운 공생관계에 있다. 우선 교사집단은 사교육이 팽창하면서 "잘 못 가르친다"거나 "잘 안 가르친다"는 질타의 대상이 되고 권위가 추락하였지만 사교육이 교육업무를 분담하는 바람에 교직은 편한 직종, 부러운 전문직이 되었다.
학생들은 사교육 덕분에 학교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육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쉬지 않고 공부하는 로봇이 되었다. 스스로 상 차려 먹는 공부는 해보지도 못하고 입에 떠먹여주는 공부에만 익숙해졌다. 학원 없이는 공부 못하는 '사교육 중독증'을 보이는 학생도 늘고 있다.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많은 엄마들의 맞벌이 이유가 사교육비 때문이고 신혼부부의 저출산 계획도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란다. 사교육은 부모에게서 금전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교육관련 양육의무도 가져갔다. "TV 꺼라" "컴퓨터 그만해라" "공부 좀 해라" 는 잔소리도 가져갔고, 밤 늦게까지 사교육 현장에 묶여 있는 자녀 덕분에 한가한 시간도 늘었다. 애들이 방과후 종일 집에 있으면 미칠 것 같다는 부모들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큰 골치거리는 사교육기관에 있다. 내가 중ㆍ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도 사교육은 존재했다. 오늘날과의 차이는 대다수 학생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그 시장이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정도로 팽창했다는 것이다. 사교육 재벌이 여럿 생겼고, 여기에 사활을 건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입시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그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 갈 것이다.
사교육의 순기능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도움을 받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정도를 벗어난 사교육은 공교육을 무력화하고 학생과 학부모를 중독 시켜 점점 더 의존적으로 만들고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도 덩달아 불안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아이들의 정신이 피폐해져도 끊을 수가 없다.
교원평가제가 효과적 방법
사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들에게 스스로 변화할 힘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책과 제도를 통해 변화를 유도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개입해야 할 대상은 학교일 것이다. 학교부터 변화해야 다른 집단의 변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학교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의 하나가 교원평가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교사의 능력 제고를 유도하는 동시에 학교 개혁을 위한 학교장의 재량권과 지원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진로상담 교사의 전문화와 질 높은 방과후 교육도 절실하다.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에서 누리는 혜택을 학교가 제공할 수 없다면 사교육 감소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1970, 80년대 산업역군에게 걸었던 우리의 희망을 이제 교사들의 땀과 노력에 걸어본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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