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이끈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이 우승에 버금가는 성적을 거둔 이후 국민적 감동과 흥분이 다양하게 확대 재생산되며 김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좋은 말은 다 동원된다. 기본-신뢰-용기-소신-진정성-경계심-관심-소통의 8대 덕목으로 풀어낸 연구가 있는가 하면 자기긍정-성취열정-하향온정-수평조화-상황적응 등의 5대 키워드로 압축한 분석도 있다. 척박한 조건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전대미문의 불황기를 넘는 기업 CEO들의 지침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런 평면적인 해석은 여운과 교훈을 길게 남기지 못한다. 2002년 월드컵 때의 히딩크 리더십에 대한 열광과 환호의 기억처럼. 김 감독이 의식하든 않든, 그의 리더십에는 색다른 뭐가 있다. 외인구단 같은 팀을 구성할 때 무심하게 던진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과,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토로한 "위대한 도전에 나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결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 컨설팅 회사는 "순리를 따르고 자신을 철저히 비움으로써 선수와 팬의 마음을 훔친 득심의 리더십"이라며 핵심에 접근했다.
▦ 위기 극복의 성공사례를 언급할 때면 흔히 리더의 탁월성만 강조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함께 목표에 헌신한 구성원, 즉 팔로어(follower)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카네기 멜론대의 로버트 켈리 교수가 "종전 연구들이 조직목표 달성에서 리더의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해 팔로어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며 팔로어십에 주목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기업이든 국가든 팀워크와 열정, 긍정적 에너지와 적극성 등의 덕목을 갖춘 팔로어십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리더십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의 사례는 이를 입증한다.
▦ 한국야구의 쾌거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일본과의 결승전 직후 '국민들이 얻은 자신감이 우승보다 더 값진 선물'이라는 축전을 직접 썼을 정도다. 얼마 전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기업CEO나 서울시장을 할 때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앞장서는 리더였지만 지금은 뒤에서 밀어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일을 줄이는 대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위기 극복 리더십이 빛나려면 그에 상응하고 공명하는 국민들의 팔로어십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고언일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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