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투자와 소비 증진, 고용 확대를 꾀하고 있다. 재정지출의 상당 부문은 건설투자에 배정되어 있다. 건설업은 재정지출로 유발되는 총수요 증대 효과와 고용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다. 일부 비판적 시각이 없지 않지만, 단기적인 충격 해소에 건설투자가 효과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소기업ㆍ근로자 함께 보호
건설투자를 통한 내수확대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정부가 지출되는 공사대금이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를 거쳐 현장 노무자까지 순조롭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공공시설 건설공사를 수주한 원청업체는 세부 공정을 전문건설업체에 다시 맡긴다. 이 하도급업체들은 원청업체로부터 하도급대금을 받아 자재를 구매하고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임금을 받은 근로자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다.
이처럼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면 정부투자의 효과는 고용확대와 소비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나 공사대금의 흐름이 단절되면 하도급업체는 연쇄적으로 파산하고 근로자는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중소기업자와 근로자의 생활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그 동안 흔한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적 경제위기로 다수의 대기업 원청업체들도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자의든 타의든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길 수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은 원청업체가 공사대금을 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현금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하고 있지만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최근 정부가 하도급대금 지급에 대한 감독을 특별히 강화하고 있는 공공발주 건설현장에서조차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장기어음을 지급한 위법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때마침 국가가 발주하는 건설공사에서는 발주자가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의원 입법으로 발의되었다. 원청업체가 하도급대금을 주지 못할 경우, 하도급업체의 요청에 따라 공사 발주자가 직접 하도급업체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하도급업체를 보호하는 기능과 함께 건설근로자 노임 체불을 방지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원청업체의 협력사로 선정되어 건설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원청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하도급업체의 입장에서는 원청업체를 제쳐두고 발주자에게 공사대금을 직접 청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에 발의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이 같은 하도급업체의 사정을 고려하여 국가가 발주하는 건설공사에서 처음부터 원청업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를 민간 건설공사에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국가와 같은 공공부문으로 한정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민간부문 파급효과 기대
공공발주 건설공사의 계약 관행이 민간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건설업계 전체의 부조리한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은 단기적이고 이기적인 득실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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