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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앙상블 '소리' 심근수·슈태블러 작품 기획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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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앙상블 '소리' 심근수·슈태블러 작품 기획연주

입력
2009.03.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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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음악감독 박창원ㆍ작곡가)가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심근수(51)씨와 그의 동료인 게르하르트 슈태블러(60)의 작품으로 26일 금호아트홀에서 기획연주를 했다. '음향의 세계'라는 제목대로, 이 공연은 음향적으로 독특한 체험을 선사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현대음악센터 이어포트(Earport)의 공동 설립자이자 공동 음악감독인 두 사람은 이어포트말고도 유럽 여러 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현대음악의 오늘을 이끌고 있는 주역. 이날 공연은 새로운 음악의 현재진행형을 만나는 신선한 기회로 가치가 있었다.

프로그램의 처음과 끝(원래 그렇게 배치하도록 작곡됐다)은 심씨의 '두 개의 부분' 13번과 15번. 이 곡의 악보에는 음표가 없다. '짧은 소리 5초, 긴 소리 10초, 짧은 휴지(休止) 5~10초, 긴 휴지 60초' 같은 규칙에 따라 각 부분의 배열 순서만 지시하고 있다. 소리 그 자체로, 또 침묵으로 시간을 구획한 이 작품은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케 한다.

이날 앙상블 '소리'는 위촉작품으로 심씨의 소프라노와 앙상블을 위한 '메아리', 소프라노와 현악사중주를 위한 '지난 밤'을 세계 초연했다. 이 두 곡은 영상(사진작가 천경우)과 함께 연주되는데, 음향이 몹시 내밀하고 섬세해서 정지된 듯 보이는 고요함 가운데 눈치채기 힘들 만큼 미세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소리는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다. 소리를 연결해서 어떤 메시지나 장면을 구성하는 음악이 아니다. 하지만 소리와 소리, 침묵과 침묵 사이에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서 흘러나오는 빛 같은 특별한 느낌이 있으며, 그 빛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말하기'에 비유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어들을 연결해서 의미를 전달하는 '소설적' 말하기가 아니에요. 저는 구문(syntax)을 만들지 않고 음 하나, 소리 하나의 현상 그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그것들이 지닌 다양한 의미의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의미 전달이나 문학적 매개 없이 일상적이고 개별적인 소리 현상만으로도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이나 정서적 만남이 가능하니까요. "

이날 슈태블러의 작품은 '백색 공간'과 '여행'이 연주됐다. '백색 공간'은 소프라노와 현악사중주, 영상이 있는 음악인데, 의미 없는 음절을 나열함으로써 목소리를 마치 악기처럼 다루고 있다.

6인 앙상블 곡인 '여행'은 비닐봉지 부스럭대는 소리와 전철역의 소음을 포함한 작품으로, 각 악기가 모종의 관계를 맺고 모호하지만 의미심장한 드라마에 동참하는 연극적 음악이다.

선율이 있고 극적인 묘사나 메시지가 뚜렷한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순수한 음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음악은 귀에 설다. 하지만 이날 두 작곡가와 앙상블 '소리'는 이 낯선 체험이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감동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대를 자각하고 미래로 전진하는 새로운 음악을 듣는 기쁨이 거기 있었다.

글·사진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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