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중반 전두환 대통령은 최창락 한국은행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한은과 경제부처 요청대로 원-달러 환율을 790원에서 890원으로 10%나 올렸는데도 수출이 부진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경쟁상대인 일본은 엔화 약세(달러 당 200엔→250엔)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전 대통령은 이에 앞서 한은 관계자로부터 환율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를 받고 경제팀에 환율을 조정토록 했다.
김재익 전 경제수석의 가르침에 충실해 물가안정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전 대통령은 물가에 부담을 주는 환율 인상론에는 쐐기를 박아놓은 상태였다. 전 대통령은 물가 안정 소신을 훼손하면서까지 환율을 인상했는데도 수출이 죽을 쑤자 환율 인상을 주장한 한은에 역정을 낸 것이다.
한은 최 총재는 부랴부랴 청와대를 찾아가 환율을 올렸다고 수출이 당장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1년 가량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시차(時差) 효과가 있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공교롭게 85년 선진7개국이 일본의 엔고(高)를 용인하는 플라자합의를 계기로 저금리, 저달러(엔고), 저유가 '3저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환율 인상과 3저효과가 맞물려 수출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환율은 수출과 성장 좌우
성장률은 86년부터 88년 사이에 연 12%씩 고공 비행했다. 경상수지도 3년 사이에 286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3마리 토끼를 잡으며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환율이 경제운용의 최대변수가 되고 있다. 80년대 이후 30여년간 수 차례의 경제위기와 호황의 사이클에서 환율은 불황의 주범으로 몰리거나, 호황의 효자로 각광 받았다. 85년의 불황과 80년대 말의 3저 대호황, 92년 총체적 난국과 90년대 중반의 반도체 대박 시기, 97년 외환위기와 이후의 수출호조 및 경제회복 과정에서 환율이 상승하면 1~2년의 시차를 두고 수출이 살아났다. 반대로 무역흑자 관리를 명분으로 달러 퍼내기와 원화강세 정책을 펼친 후에는 수출이 감소하며 경제가 가라앉았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로 환율이 다시금 급등하면서 기업들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LGLPL 등이 고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해외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도요타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이 해외수요 격감과 엔고 직격탄을 맞아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과 명암이 엇갈린다. 우리 기업들이 고환율 파도에 올라타 영토 확장에 나선다면 향후 시장 재편의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헛된 꿈만은 아니다.
하지만 엔고는 조만간 진정될 수밖에 없다. 엔고 착시(錯視)에 빠져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게을리하면 엔고는 독배가 될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고를 비대해진 군살을 빼면서 사업재편의 기회로 삼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도요타가 이번 회기에 사상 최대의 적자를 냈다며 감원 임금동결에 나서고 있지만 내부 유보금만 162조원이나 된다. 앞으로 10년간 불황이 이어져도 견딜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우리가 고환율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한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포스트 엔고에 대비한 체질 강화와 수익성 제고노력이 중요하다.
달러 퍼내기ㆍ원고(高) 경계를
정부도 환율 등락이 수출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환율 운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역대정권마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 해외투자 자유화와 송금한도 확대로 원화 강세를 부추기고 나라곳간을 축냈다. 이 같은 우매한 정책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외환보유대국(2,000억 달러)이 됐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국가부도위험이 높은 국가로 지목돼 잦은 위기설의 희생양이 됐다.
제3의 외환위기가 덮치는 것를 막기 위해선 나라곳간을 튼실히 쌓는 수밖에 없다. 정부나 기업이나 외환보유액을 현재의 2,000억달러에서 3,000억달러, 5,000억달러로 늘릴 때까지 일로 매진해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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