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너머 눈매가 날카로웠다. 인터뷰 중 한국어 질문과 통역이 이뤄지는 순간엔 스마트폰을 붙잡고서 무언가에 열중했다. 그렇다고 질문의 요지를 놓치지도 않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싶으면 즉각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단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는 할리우드 CEO의 자세가 몸에 밴 듯했다. 빠른 판단력과 결정력이 그 어느 곳 못지않게 생존의 필수요소로 통하는 할리우드에서 30여년 성공가도를 달려온 '미다스의 손'다웠다.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성공신화인 제프리 카젠버그(59). 35세의 나이에 월트디즈니스튜디오 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드림웍스 SKG를 공동 설립한 뒤 '슈렉'과 '쿵푸팬더' 등의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은 인물이다.
애니메이션 명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CEO인 그의 얼굴은 새로운 도전에 따른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인트루 3D'라는 자체 개발 기술을 활용한 첫 3D 애니메이션 '몬스터 vs 에이리언'(4월 23일 개봉)이 관객들의 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카젠버그는 지난해 '몬스터…'를 신호탄으로 향후 모든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외계인에 맞서는 돌연변이들의 활약상을 담은 '몬스터…'는 94분의 상영시간 내내 화려한 입체 화면으로 동공을 압박한다. 탁구공이 눈가를 칠 듯이 화면에서 툭 튀어나오는 시각효과 등이 기술적 성취를 자랑한다. 드림웍스 특유의 순발력 있는 재치와 유머도 여전하다.
카젠버그는 "'몬스터…'의 시각 효과는 새로운 영화시대를 이끌 첨단 기술"이라고 말했다. "영화 관람과 영화 제작, 특히 스토리텔링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한 번 보는 게 삼천 마디 말보다 더 낫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3D 애니메이션이 기존 2D 영화의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정서까지 담보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920년대 유성영화가 등장했을 때도 똑 같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될 때도 사람들은 '하나의 술수에 불과하다'며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결국 관객들이 평가를 하고 결론을 내릴 겁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무게감을 부여하기 위해 할리우드 거물들을 일일이 거명하기도 했다. "스필버그와 로버트 저메키스, 조지 루카스, 피터 잭슨, 제임스 카메론 등 당대의 최고 감독들이 지금 3D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그 대열에 함께 서 있어 다행입니다."
그는 "영화와 달리 DVD는 당분간 2D로만 즐길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1만8,000명이 경기장에서 축구를 본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를 TV중계로 보며 즐기기 마련"이라며 3D 영화 시대의 도래가 DVD 시장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젠버그는 3D 영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하면서도 "결국 영화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말했다. "3D는 이야기나 감정을 바꾸지 않고 이를 증폭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관객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정평이 난 그도 여전히 "시시각각 변하는 관객들의 기호가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연봉은 여전히 1달러에 불과하고요. 제 자리에 한번 앉아보고 싶으신가요."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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