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에서의 동반 금빛 세리머니를 미리 보여 드릴게요."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최초의 '레슬링 남매'인 엄혁(24ㆍ상무)과 지은(22ㆍ서울중구청)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동반 금빛 사냥을 약속했다.
옆에만 있어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들 남매는 11월 덴마크 세계선수권이 열릴 때까지 태릉선수촌에서 동고동락하며 런던올림픽 동반 금메달의 꿈을 키울 예정이다. 지난 25일 레슬링 남매를 태릉선수촌에서 만나봤다.
■ 오빠 따라 레슬링장 갔다가 '가문의 영광'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중1부터 유도를 했던 지은에게 레슬링은 낯설었지만 우연히 오빠를 따라 레슬링 경기장에 갔던 것이 레슬링 입문의 동기가 됐다.
지은은 2005년 고3 때 용인대 레슬링 선수였던 오빠의 권유로 3일간 연습을 같이 했다. 용인대 코치는 이때 지은의 가능성을 보고 선수등록을 권유했고, 그는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거둬 유도에서 레슬링으로 전환하게 됐다.
지은은 "사실 처음에는 꽉 조이는 타이츠가 입기 싫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폼을 계속 입다 보니 적응됐고 성적까지 좋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았다. 둘은 2006년 회장기대회 때 처음으로 동반 정상에 오른 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에서 두 번째 동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지난 17,18일 2009 세계선수권 및 아시아선수권 파견 최종 선발전에서 지은은 자유형 59㎏급, 혁은 그레코로만형 66㎏급에서 차례로 정상에 올라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함께 다는 '가문의 영광'을 이뤘다.
혁은 "국내 선발전에서 1위하기가 힘든 데 호적수의 부상과 체급 변경 등의 적당한 운이 따라줘서 동반 입촌할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레슬링 남매가 지금까지 수확한 금메달만 14개에 달하고, 총 40여개의 자랑스러운 메달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가족이자 코치, 동업자이자 경쟁자 관계
남매가 같은 운동을 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묘한 경쟁심도 발동한다. 전국대회가 열리면 둘은 항상 경기장에서 조우한다. 지난 17일 최종 선발전에서도 지은이 먼저 태극마크를 확정지었다.
그러자 오빠 혁은 질투 섞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너도 1등 했는데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자 지은은 승부욕을 자극하는 답문을 띄웠다. "내일 결승인데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라."
'무뚝뚝 남매'로 통하는 이들의 문자메시지와 대화는 여느 다른 가족과는 달리 경쟁심리가 묻어난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경기 전 연습 파트너로서 어깨를 맞대며 굳은 몸과 떨리는 마음이 동시에 풀려 긴장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엄격한 코치'이기도 하다. 지은은 혁의 냉정함에 혀를 내두른 일화를 공개했다. "용인대 재학 중 2년 선배였던 오빠는 나를 제일 심하게 기합을 줘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훈련 때만은 동생이 아닌 선수로서 '사랑의 채찍질'을 아낌 없이 가했다. 하지만 지은과 혁은 각자의 경기를 모니터해 경기운영과 기술에 대한 코치를 해준다.
가족이다 보니 둘은 주특기가 엉치걸이로 같고 큰 기술을 위주로 공격하는 경기 스타일도 '닮은꼴'이다. 상무 입대 후 몰라보게 기량이 좋아진 혁과 국내 1인자로 자리매김한 지은은 런던올림픽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뛰는 서로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차례로 남겼다.
"안 다치고 열심히 해서 꼭 같이 금메달을 따자." "금메달 따면 오빠가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하고 싶어."
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