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노보그라츠 지음ㆍ김훈 옮김/이른아침 발행ㆍ608쪽ㆍ1만6,000원
빈곤만큼 전 인류가 달려들어도 풀지 못하는 숙제도 없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무리 위대한 정치가도, 빈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1인당 연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미국이라도 빈곤의 칼날 앞에서는 연약하기만 하다. 빈곤율이 무려 13%에 달할 정도이다. 눈길을 세계의 구석으로 돌리면 상황은 더 비참하다. 세계은행은 하루 1달러 미만 소득자를 극빈층, 2달러 미만 소득자를 빈곤층으로 구분하는데 68억명의 지구촌 식구 중 무려 28억명이 빈곤층에 속하고 이중 13억명이 극빈층에 들어간다.
과연 이 빈곤의 그늘을 벗어날 솔루션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할까. <블루 스웨터> 의 저자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그 출발은 미약했지만 부와 빈곤의 끊어진 고리를 잇는 데 성공했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블루>
책은 저자가 아껴 입던 푸른 스웨터를 어릴 때 헌옷가게에 팔았다가 세월이 지난 후 우연히 아프리카의 거리에서 이 옷을 입은 소년을 마주친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이 푸른 스웨터와의 조우를 통해 빈자든 부자든 모두가 연결된 세계에서 사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받아들이고, 르완다 등지에서 빈민구제사업에 투신한다.
하지만 일회적 원조가 그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현실에 부딪힌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한다. 그가 2001년 록펠러재단 등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세계 최초의 비영리 벤처캐피탈 '어큐먼 펀드(Acumen fund)'이다.
저자는 펀드를 꾸리고 극빈층을 상대로 장사할 수 있는 선하면서도 혁신적인 40개 기업을 찾아내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냉혹한 자본주의적 영리사업과 자선사업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세상을 변혁하는 방향을 제시한 이 사업으로 아프리카 등에 무려 2만1,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선한 기업의 사업 덕분에 빈민들이 마음놓고 마실 수 있는 상수원이 개발되는가 하면, 병원사업가들의 도움으로 많은 이들이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되찾았고, 빈자들은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그야말로 물고기 대신 낚시 기술을 가르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오랜 격언을 입증한 셈이 됐다.
책은 '어큐먼 펀드', 그리고 이 펀드의 지원을 받은 선한 기업을 통한 극빈층 지원이 그 어떤 원조보다 광범위한 복지를 달성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전달한다. 자본가에겐 새로운 사업기회를, 극빈층에는 일회적 원조를 넘어서는 일자리가 주어지는 해법이 기막히게 유쾌하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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