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떠나는 사람이었어요. 돈, 권력 같은 것들을 좀 우습게 알았지요. 하지만 부모님은 늙어가시고, 2년마다 집을 옮겨다녀야 하고…. 현실적인 욕구와 맞닥뜨리니 좀 미안해졌지요. 그런저런 느낌 때문에 한동안 글을 못 쓰기도 했지만, 결국 시가 저를 구원해 주더군요."
최영미(48)씨가 4년 만에 자신의 네번째 시집 <도착하지 않는 삶> (문학동네 발행)을 냈다. 새 시집에는 불덩이 같았던 1980년대에 청춘을 저당잡혔던 한 여성이, 시나브로 닥친 중년이라는 시간대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공허감이 짙게 묻어난다. 그러나 최씨의 그것은 80년대에 대한 부채감과 쓰라린 환멸감을 그 후 20년 동안 취직_내집 마련_주식투자_극성스런 자녀교육 따위에 몰두하며 허위허위 외면하려 했던 동년배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도착하지>
남편도, 아이도, 집도 없이 전업 시인으로 살아오며 쉰 살의 문턱에 다다른 시인은 "이제 내 손에 쥐어진 패는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되묻는다. 고통스러운 그의 자기응시는 '기계가 멈추었다// 가고 싶은 길은 막혔고/ 하고 싶은 일은 잊었고// 배터리는 나갔는데/ 갈아끼울 기력도 없다'('청개구리의 후회'에서)는 무력감을 낳기도 하고, '내 아무리 잘난 척해도/ 그들처럼 불쌍한 인간./ 고프면 먹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하늘의 소리'에서) 자기연민에 빠지게도 한다. 그리고 '물질에 초연하지 못하고/ 권력에 엎드릴 수도 없는'('漢詩를 읽은 다음날'에서) 심리상태로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삶에 대한 긍정은 불각의 순간에 찾아든다. 그가 "내가 시를 쓰지 않고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로 번민하던 어느 비 내리는 여름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베란다로 나왔더니 불현듯 한 구절이 스며들었다. '내게 들어왔던, 내가 버렸던 삶의 여러 패들은// 멀리서 보니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지루하지 않은 풍경'에서). '이루지 못할 소원은 붙잡지도 않아'('사계절의 꿈'에서)라고 선언하는 시인은 이제 생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을 통해 삶을 긍정하기로 한다. 조카의 손을 붙들고 극장을 찾은 그는 '통장의 잔고도 잊고/ 심장에 박힌 가시도 잊고/ 용서하지 못하던 밤들도 용서'('극장'에서)한다고 고백한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로 상징되는 에너지 넘치고 뾰족뾰족한 '최영미' 스타일의 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젊은날의 열정을 곰삭이고 자신의 상처를 덧내고 헤집은 뒤 인생에 대한 깊어진 성찰로 승화시킨 몇몇 시편은 그의 이번 시집의 순금과 같다. 서른,>
최씨는 몇년간 정치집회는 애써 피하려 했지만 지난해 여름에는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부랴부랴 상경했었다고 한다. 그것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종이컵 안에서 안전하게 촛불처럼 온화한 눈빛./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 외치다가 내가 죽을 구호를 모르는 건강한 입술./…/ 친구와 수다를 즐기며 이탈리아 식당에서/ 칼을 들고 연어의 생살을 갈랐다. / 입 안에 죄의식의 거품을 품지 않고'('2008년 6월, 서울'에서)
"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써놓고 나니 좋더라. 80년대에는 시위에 나갔다 오면 밥 먹는 것도 죄스러웠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끝나고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이탈리아 음식을 시켜 먹었다. 시위는 시위고 좋은 음식은 좋은 음식 아닌가. 이게 역사의 진보 아닌가 싶다"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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