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흔적 남은 근대풍경 '처연한 시간여행'
목포를 주제로 한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처연한 가락에 실린 목포란 두 글자는 '항구'와 '눈물'로 은유되고 있다.
목포는 근대와 함께 시작된 도시다. 그 이전 서남 해안의 중심은 영산강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 나주 영산포였다. 유달산 자락에 작은 어촌만 있던 목포가 열린 건 근대의 이름으로 제국의 침탈이 가시화하던 19세기 후반이다.
일본이 목포를 거점도시로 키운 것은 영산포에 비해 큰 배를 접안할 수 있고,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이뤄 최적의 항구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포는 1897년 개항을 했고 전남에서 최초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했다. 호남 곡창의 쌀과 면화, 소금은 목포로 모였고,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 이주를 권장한 일제는 목포에 일본인이 살 수 있도록 간척을 해서 시가지를 조성했다. 현재 목포 시가지의 80%는 갯벌, 바다를 메워 일군 땅이다. 간척을 통해 시작된 도시는 최근까지도 하당 신도시 등 간척으로 그 세를 넓혀왔다.
목포의 화려함은 그러나 해방 후 산업화의 물결에서 소외되면서 빛을 잃어갔다. 영남, 수도권에 밀렸고 새로운 발전의 동력을 찾지 못했다. 지금 목포 시내에 많이 남아 있는 근대의 흔적들은 그 소외의 뜻하지 않은 결실이다.
목포 중앙동의 일명 본정통 거리를 걸어보자. 일제가 혼마치(本町)라 구획했던 이곳엔 옛 화신백화점과 당시 만주에도 지점을 냈다는 갑자옥 모자점, 옛 송촌문구점(현 슈퍼마켓)을 비롯해 독특한 일본식 건물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과거 번화했던 거리가 당시 건물의 원형을 간직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목포 근대문화유산 답사에 나설 요량이면 그 첫걸음은 목포문화원으로 쓰고 있는 옛 일본영사관으로 갈 일이다. 지금 한창 보수 공사 중인 이 건물은 1900년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다. 비탈 위에 올라서서 일본인 조차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곳에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다.
문화원 아래에 우뚝 선 '목포근대역사관'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 건물이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다. 건물 1층은 '동척'이 세워지던 1920년대 목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유달산 아래 나지막이 둥지를 틀었던 마을들의 모습이 정겹다. 2층에는 일제 침략의 만행을 증명하는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잘린 목에서 피가 치솟고, 처형한 목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일본군인 모습 등 참혹한 순간의 사진들이다.
피가 끓고 목 뒤가 달아오른다. 눈 뜨고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야 하는, 분노와 역겨움에 한참 동안 숨을 골라야 하는 처참한 기록들이다.
동척과 멀지 않은 '이훈동 정원'도 근대역사의 유산이다. 호남 땅 17개 농장을 거느렸던 일본인 우치다니 만빼이가 짓고 살았던 호화스러운 집이다. 유달산 자락을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 안은 조경이 빼어나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다. 해방 후 이 집은 한 국회의원의 손을 거쳐 1947년 조선내화 사장인 이훈동(92)씨가 사들여 가꾸고 있다.
무안동 한복판에는 일본식 사찰이 버티고 서있다. 1930년대 지어진 일본불교 동원본사 목포별원이다. 이 건물은 광복 후 목포중앙교회가 인수해 절집이 아닌 교회로 쓰이기도 했다.
이밖에 일제 강점기 때 요정 골목이었던 금화동의 사쿠라마치, 신안비치호텔 뒤편의 목포공생원, 동명동의 옛 신사로 오르던 77계단 등도 목포의 근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들이다.
목포의 역사를 둘러보는 일정이라면 빼먹을 수 없는 곳이 온금동이다. '따뜻한 만'이란 뜻의 토박이말로 '다순구미'란 옛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유달산 자락에 붙어 바다를 굽어보는, 따뜻할 온(溫)에 비단 금(錦)자를 쓰는 온금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가난한 달동네다.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인 정호연(59)씨는 "목포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 유달산 자락을 지키며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살던 원조 목포마을"이라고 했다. 정씨는 '조금새끼'를 들어봤는지 물었다.
넉넉지 못한 뱃사람들이 살던 온금동에 얽힌 이야기다. 바닷물이 빠지는 조금 때면 어부들은 출어를 포기해야 한다. 모처럼 집에서 쉬는 뱃사람들이 뭐 할게 있을까.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아기를 갖는 시기이기도 했다.
마을엔 유독 생일이 같은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다. 그 아이들이 자라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과 싸우다 한꺼번에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잦아서 마을엔 제삿날이 같은 집도 많았다.
해가 기웃할 때 찾은 온금동. 대를 잇는 가난의 사슬을 끓으려 죄다 떠나서인가. 마을은 노인들만 몇 남아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키고 앉아 있다.
유달산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고 선 마을. 외지인에겐 아늑하게만 보이는 마을이지만 노인들의 눈에 비친 온금동은 고단함으로 끈적였다. "고기 많이 잡힐 땐 그래도 살 만했제. 남정네들은 죄다 바다 나가 죽어불고, 과부도 딴데 시집가고 또 나이 들어 저세상 가는 바람에 이젠 빈 집이 더 많소."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할머니 곁으로 갑자기 아이들 셋이 바람처럼 뛰어 내려갔다. 어깨에 두른 가방으로 봐서 초등학생 같은데, 어느 집에 사는 '조금새끼'일까, 조금새끼의 '새끼'들일까. 그때 구름이 열리면서 아이들을 품은 다순구미의 품으로 한 자락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소박한 달동네 온금동도 곧 재개발된다고 한다. 목포의 또 하나의 역사가 지워지려고 한다.
목포=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입이 즐거운 목포/ 낙지·삼합·민어의 성찬 '황홀한 미각순례'
지도를 펼쳐놓고 목포를 찾아보자. 신안의 1,004개나 되는 섬과 진도 해남 완도의 바다가 지척이고, 영암 강진 함평 무안 나주의 광활한 들판이 코앞이다. 목포는 맛의 고장 호남에서도 진미만 모여드는 맛의 집산지다. 목포 여행이 즐거운 것은 황홀한 맛의 성찬이 골목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낙지다. 목포는 신안 무안 등 주변에 드넓은 갯벌이 발달해 늘 싱싱한 낙지를 맛볼 수 있다. 보통은 산낙지 연포탕 볶음 등으로 낙지를 해먹지만 봄 미각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낙지 요리도 있다. 목포시 산정동에 자리한 낙지 전문점 '해궁'의 낙지 배추 무침이 그것이다.
살짝 데친 뻘낙지를 데쳐 찢어 놓은 배추와 막걸리 식초 된장 고추장 당근채 마늘 홍고추 설탕을 넣고 버무려 낸다. 새콤달콤 아삭한 낙지 배추 무침에 침이 뚝뚝 떨어진다.
해궁의 또 다른 봄철 낙지 요리로는 낙지 초무침을 빼놓을 수 없다. 데친 낙지에 오이채 당근채 미나리 양파 홍고추 풋고추 등의 야채와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막걸리식초 깨 등을 넣고 무친 초무침에는 싱싱한 봄기운이 한가득이다. 배추 낙지 무침, 초무침 각 2만 5,000~5만원 선. 3~5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061)273-7800
낙지와 겨루는 목포의 또 다른 음식은 삼합이다. 잘 삭힌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를 푹 익은 김치에 싼 다음 새우젓을 얹어 먹으면 콧구멍이 뻥 뚫리는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목포 종합수산시장을 찾으면 흑산 홍어 등을 취급하는 전문점이 즐비하다. 홍어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다. 마니아들은 '1코, 2날개, 3꼬리'로 등급 짓는다.
삼합과 함께 꽃게장으로 유명한 목포 맛집이 있다. 옥암동의 '인동주마을'이다. 하의도 출신인 주인 우정단(59)씨는 흑산 홍어만을 전문으로 취급한다고 강조한다.
보름 남짓 삭힌 홍어회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기본으로 오르고, 가오리찜, 간재미 무침, 간장 꽃게장, 양파 김치, 미나리 무침, 감태 무침, 홍어 보리 애국 등이 한 상 가득 오른다.
네 사람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한 상 가격이 믿기 어려운 단돈 3만원. 10년 동안 변치 않는 가격이다. 우씨가 개발한 노릿한 인동주도 곁들일 수 있다. (061)284-4068
민어는 여름 한때가 제철이지만 봄부터 싱싱한 횟감을 맛볼 수 있다. 목포에는 아예 '민어 거리'가 형성돼 있다. 그만큼 목포 사람들이 민어를 즐기기 때문이다.
큼직할수록 더 맛이 있는 민어는 크기가 1m를 예사로 넘는다. 무게도 7~20kg씩 하는데, 7~8kg 한 마리면 6~7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있는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요즘 8kg짜리면 40만원을 호가한다.
만호동 민어 거리에서도 '영란횟집'이 유명 맛집으로 통한다. 최고 민어 산지인 임자도 민어만 가져다 쓰는데, 미리 민어잡이 배에 선금을 주고 늘 최상의 것을 상에 올린다는 게 주인 박영란(57)씨의 설명이다. 민어회 한 접시 4만 5,000원(2~3인분). 매운탕(5,000원), 민어전(4만 5000원)도 별미이다. (061)243-7311)
목포여고를 졸업했다면 분명 '쑥꿀레'를 기억할 것이다. 목포여고생들의 영원한 간식 쑥꿀레는 목포 여인네들 사이 사춘기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음식이다. 쑥꿀레는 이른 봄 야산에서 캔 쑥을 찹쌀 고두밥에 넣고 함께 떡메로 친다.
동그랗게 경단을 빚어 껍질 벗긴 팥고물을 묻힌 후 조청에 찍어 먹는다. 부드럽고 달콤한 찹쌀 경단에 쑥향까지 풍기는 남도의 봄 음식이다. 추억의 간식은 목포시 죽동에 있는 60년 전통의 분식집 `쑥꿀레(사장 오정희)'에서만 맛볼 수 있다.
주인 오정희(63)씨의 친정 어머니가 한국전쟁 직후 목포여고 앞에서 봄 쑥을 뜯어다 만들어 판 것이 쑥꿀레의 유래다. 봄철 반짝 상품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 집은 조청을 묽게 쑤어 쑥꿀레가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게 곧잘 넘어간다. 숙꿀레 한 접시 4,000원. (061)244-7912
목포=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