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이 묘연한 685억원은 누구에게 흘러 들어갔을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ㆍ관계 로비에 대한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 검찰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남아 있다.
박 회장이 태광실업의 홍콩법인인 APC를 통해 2003~2007년 회사에서 배당받은 685억3,000여만원의 행방이다. 박 회장은 홍콩 현지에 계좌를 개설해 배당소득을 예치했고, 그 뒤 여러 계좌로 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살피고 있지만, 계좌추적이 홍콩과의 사법공조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 작업이 매우 더디다. 지금까지 정치인 등에게 제공된 것으로 드러난 수십억원의 불법 자금은 이 계좌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해외에서 받았다는 달러도 APC자금은 아닌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APC자금은 워낙 덩치가 크고, (정치인들에게) 해외에서 전달한 자금은 1만 달러, 2만 달러 수준으로 박 회장이 별도로 환전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APC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박 회장측은 "200억원 정도가 홍콩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베트남과 중국, 캄보디아에서 현지 정부 고위층에 대한 로비 자금 및 사업 확장 비용 등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로비이긴 하지만,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돈이 순전히 해외 정부 기관에 대한 로비자금으로만 쓰였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자금 추적이 쉽지 않은 해외계좌는 오히려 국내 인사에게 은밀히 불법자금을 전달하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APC자금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박 회장이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전달한 250만 달러(37억원)도 홍콩에 개설한 해외 계좌에서 나왔다.
검찰은 계좌추적과 별도로 박 회장의 수첩과 전표 등을 통해 APC자금의 쓰임새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이를 뒷받침할 계좌추적 자료가 도착하면 조만간 그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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