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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답안 쓰는 '한은법 개정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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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답안 쓰는 '한은법 개정 방정식'

입력
2009.03.2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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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대처과정에서 불거졌던 한국은행법 개정작업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통상적 입법과는 달리 국회가 앞장서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오히려 해당 기관들이 미온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한은법 개정의 세 당사자들은 원론적 동의에도 불구, 현재 서로 다른 셈법에 골몰하고 있다. 때문에 국회의 적극성에도 불구, 한은법 개정 방정식은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은법 다시 수면 위로

지난해 금융위기 발생이후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비해 한은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은법 개정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중앙은행 제도를 고치는 것이 워낙 복잡미묘한 작업이라, 한은법 개정은 '장기 추진과제'로 미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회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여야는 한은법 개정에 대해 기본합의를 도출한 데 이어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내친 김에 빠르면 4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재정위가 구상중인 개정방향은 민간 금융회사를 지원할 필요성이 생기거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경우 한은이 정확한 현장실사를 위해 금감원과 공동조사에 나서는 '제한적인' 금융조사권을 한은에 부여하는 것. 현재 한은은 연초에 보내는 검사계획(관례적으로 연 1회)에 따라서만 금감원과 공동검사에 나설 수 있게 돼 있다.

또 한은의 유동성 지원방식을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에 따라 회사채나 기업어음(CP)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병수(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은 다만 "한은에 자료제출 요구권이나 단독 검사권을 갖게 되면 금감원의 감독권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어 부처간 업무영역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세계적 금융위기에 맞서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현재 '물가안정'에 책임과 역할이 집중돼 있는 한은법이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금융안정'기능을 포함해 어느 정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도 반대 목소리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고치느냐는 것. 각론으로 들어가면 3개 기관은 물론, 심지어 여ㆍ야 의원들까지 입장차가 드러난다. 국회에서 한은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2월13일 윤증현 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는 조찬 회동 당시 "한은법 개정은 필요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ㆍ검토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표현은 '공감'이었지만 사실 방점은 서로 다른 이유로 '나중에 하자'는 데 찍혔다.

여기에 감독당국 수장은 아예 내놓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2월 23일 국회 답변을 통해 "현 시점에서 한은법 개정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부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고 못을 박았을 정도다.

서로 다른 셈법

먼저 당사자인 한은은 '고치려면 제대로 고치자'는 입장. 발권력을 쥔 중앙은행으로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치논리나 여론에 밀려 돈을 풀게 되는 상황이다. 법안목적 조항에 '금융안정'만 넣고 그에 맞는 수단이 따르지 않을 경우, 자칫 한은이 '돈 찍는 공장'이 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때문에 한은은 현재 은행권에만 한정돼 있는 검사범위를 제2금융권까지 넓히고, 위기가 닥치기 전에 미리 대비ㆍ경고할 수 있도록 평시 단독 조사권과 자료 제출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예를 들어 금융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있을 경우 조기경보를 발동할 수 있는 권한,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너무 높을 경우 이를 조사ㆍ분석할 수 있는 권한, 필요하면 은행장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른바 '시어머니론'을 들어 법 개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가뜩이나 금융사들이 감독당국을 껄끄러워 하는데, 한은까지 감독권을 갖게 되면 또 하나의 '시어머니'가 생긴다는 논리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은에 단독 검사권을 주기보다 금감원과 공동검사를 활성화하거나 정보 공유를 확대하는 방향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감독권을 어떻게든 넓히려는 쪽(한은)과, 지금의 독점적 감독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쪽(금융위)의 필연적 대립이기도 하다.

법안 제출권을 가진 재정부는 '골치 아픈 논의는 미뤄두자'는 입장에 가깝다. 경제위기 상황에 부처간 갈등은 오히려 위기만 심화시킬 수 있고 현행법으로도 당장 급한 조치는 가능하니 법 개정은 중장기적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다. 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위 표현을 빌면 개정안의 조사권은 현재 시스템과는 다른 것인데 아무래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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