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박 회장의 비리 전반을 파헤친 곳이지만 박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시도했던 기관이기도 하다.
박 회장이 실제 국세청 간부들을 일상적으로 관리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여기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돌연 출국이라는 석연치 않은 행보까지 겹쳐 국세청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검찰이 확보한 박 회장 여비서의 수첩에서 드러났다. 이 수첩에는 2006년 중반쯤 부산지방국세청장과 지역 기업인들의 간담회 일정 및 장소와 함께 '봉투 6개 준비'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담회는 부산지방국세청장의 환송회를 겸한 것이었다. 물론 봉투가 실제 전달됐는지, 액수가 얼마인지, 수령자가 몇 명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 뒤 사정을 감안할 때 박 회장이 행사에 참석한 뒤 문제의 '봉투'를 건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간담회가 부산지방국세청장 교체 직전에 개최된 것으로 미뤄 볼 때 박 회장이 전별금 용도로 봉투를 준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이 부산ㆍ경남 지역 인사들을 일상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것이 정설인 만큼 이 지역에 부임하는 국세청 간부들은 당연히 관리대상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건설업 등으로 사업을 꾸준히 확장해온 박 회장으로선 세무당국 관리가 최우선이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오래 전부터 부산청은 물론이고 국세청 본청 간부들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대한 수사는 박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맞물려 그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태광실업 등에 대한 대대적 세무조사를 벌였고 박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실세였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통해 구명 로비를 벌였다.
비록 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실패했지만 추 전 비서관이 "힘써보겠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감안하면 추 전 비서관 등이 정권 핵심 인사나 세무 당국 등의 관련 인맥을 통해 실제로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해 11월 이명박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직보했다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보고 내용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 알려지면 안 되는, 정권 차원의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지난 15일 한 전 청장의 출국에 대해서도 분분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전 청장이 박 회장의 로비와 관련해 또 다른 깊숙한 내막을 알고 있다는 부담 때문에 혹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국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의 주변 인사들은 "한 청장이 퇴임 직후부터 재충전을 위해 미 스탠퍼드 대학 2년 연수과정을 준비해 왔다"며 "출국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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