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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50년, 재도약 위한 개벽의 축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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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50년, 재도약 위한 개벽의 축제 연다

입력
2009.03.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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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동학)가 4월 5일 창도(創道) 150년을 맞아 한 판 큰 축제를 벌인다.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사인여천(事人如天)'을 근본 사상으로 하는 천도교는 우리 근ㆍ현대사를 이끌어온 민족사상이며 정신운동이기도 하다. 천도교계는 이번 축제가 종교 행사를 넘어 전통 정신문화운동 부흥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천도교 창도일은 제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1860년 4월 5일 한울님으로부터 우주 본체의 영적 능력인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은 날을 기념하는 경축일이다. 천도교에서는 이를 '천일(天日)'이라고 해서 교계 최대의 기념일로 삼아왔다.

수운 대신사의 동학사상은 당시 무너지고 있던 조선왕조의 전통 질서와, 동양을 침범하던 서양의 근대적 질서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응축된 신념체계였다. 그래서 인내천 사상이나 '양반과 상민이 따로 없다'는 수운 대신사의 주장은 동학혁명과 3ㆍ1 독립운동의 사회적 에너지가 됐고, 대종교와 원불교 같은 전통 종교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줬다.

조선 말 사교로 나라를 문란케 한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으로 몰리는 극심한 탄압을 이기고 민중 속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던 천도교가 쇠락하게 된 배경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성사가 천도교의 조직과 역량을 활용해 3ㆍ1 독립운동을 주도하자 일제는 자산 몰수와 지도부 분열 책동 등을 통해 천도교 말살정책을 추진했고, 당시 교인 수 300만명에 달했던 교세는 급격히 위축된다.

분단 후 남북 정권의 배척으로 쇠락을 거듭하던 천도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부흥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1976년 최덕신 전 교령, 1997년 오익제 전 교령 등이 잇따라 월북한 사건으로 성장세가 멈췄고, 현재 교인은 10만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천도교 중앙총부가 주관하는 '천도교 천일 기념 대축제'는 4월 4, 5일 수운 대신사가 무극대도를 받은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 용담정(용담성지) 일대에서 다양한 행사로 진행된다.

4일 오후 2시에는 천도교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의 동상이 있는 황성공원에 5,000여명의 교인이 모여 참배식을 갖고 경주 시내를 돌며 '동학군 마임놀이' 등 퍼포먼스 행진을 벌인다. 이날 밤에는 경주 노동고분공원에서 경축 전야제와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5일 오전 11시에는 용담정에서 기념식을 봉행한 다음 그림 그리기 대회, 풍물놀이, 민요 한마당, 동학군 무예무 등 축하행사를 벌이고 천도교 정신을 알리는 강연회를 개최한다.

김동환 천도교 교령은 26일 미리 배포한 창도일 기념사를 통해 "천도교는 병들고 낡은 세상을 새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개벽하자는 사명감에서 갑오동학혁명, 3ㆍ1 독립운동 등을 이끌었다"며 "그래서 천도교는 어느 한 종단만의 것이 아니라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류사회를 구제할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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