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박연차 리스트'가 관가(官家)를 뒤흔들고 있다. 박연차(구속기소) 태광실업 회장이 정치인 뿐 아니라 국세청과 검찰 및 경찰 등 권력기관의 간부들에게 전방위로 금품을 뿌린 정황이 포착되고, 해당 인사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검찰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박 회장의 '관가 인맥'은 주로 부산ㆍ경남지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사들에 집중돼 있다. 2006년 부산국세청장을 지낸 A씨가 대표적이다. A씨는 그 해 5월 말 박 회장과 초선 국회의원 11명의 골프회동 이후 김해시의 고급 룸살롱에서 열린 뒤풀이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과의 예사롭지 않은 '친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음달에는 A씨가 부산지방국세청 간부들과의 간담회 자리에 박 회장을 불렀다. 박 회장은 당시 '돈봉투 6개'를 준비했던 것으로 검찰이 압수한 비서실 여직원 수첩에 기록돼 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공직을 떠난 뒤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회장으로 있는 세무법인 하나의 고문으로 취임했다. 박 회장과의 인연이 계속된 셈이다.
검찰도 박 회장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박 회장에게서 2차례 골프접대를 받은 모 지방검찰청장 B씨의 금품수수 정황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1990년 박 회장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던 사건을 담당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02년 부산지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현 부장검사 C씨도 이를 계기로 박 회장의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부터 부산과 울산, 창원에서만 근무해 온 '향판'으로 현재 고법 부장판사인 D씨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D씨는 2008년 박 회장이 항공기내 난동 사건으로 약식기소됐을 때 이를 정식재판에 회부한 모 판사를 컴퓨터 배당에서 제외시켰다. 박 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한 셈이다.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전직 경찰청장 E씨와 F씨도 역시 2003~2005년 사이에 경남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장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경찰청장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박 회장은 이들에게 각각 수천만원~억대의 돈을 건넸다고 전해진다.
해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거나 박 회장과의 인연이 전혀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박 회장이 지역의 최고위급 인사들은 물론, 일선 기관들의 초급 간부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뿌렸다는 소문이 파다해 과가는 당분간 박 회장의 '입'과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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