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끝까지 한눈팔지 않고 본 게 어느 영화까지였나 싶다. 보는 자의 인내력을 시험하겠다고 덤비는 듯한 영화밖에 한동안 못 본 것 같은데, 며칠 전 몸과 마음이 온통 빠져드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란 영화다. 보고 나서는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장편소설 한 편 끝까지 읽은 것도 언제였나 싶은데, 이 소설도 밤늦게까지 책장을 넘겨가며 읽었다.
그리고 어제 오늘 한국의 언론 관련 뉴스를 보고는 이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뉴스전문채널 노조위원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고, 지상파방송사 PD 한 명은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인 열아홉살 인도 청년은 10억 루피(한국 돈으로 약 260억 원이다)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했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경찰에 끌려간다.
학교도 다닌 적이 없는 슬럼독(slumdog) 즉 '빈민가의 개' 같은 가난뱅이가 무슨 수로 그런 큰 돈이 걸린 퀴즈쇼에서 13문제를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맞출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무슨 속임수를 썼을 것이다, 라는 것이 인도 경찰이 그 청년을 잡아가 고문한 이유였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논란이 없을 수 없는 한국 검ㆍ경의 언론인 인신구속과, 비록 소설과 영화 속 이야기지만 한 청년에 대한 인도 경찰의 어이없는 처사가 겹쳐 떠오른 것은 왜일까.
언론의 역할을 흔히 사회의 파수견, 워치독(watchdog)에 비유하곤 한다. 인도든 한국이든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슬럼독이나 워치독, 다 개로 보이는 모양인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경찰에 붙잡힌 청년은 이렇게 자문한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자초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짓는 선을 절대 넘지 말라고 했던 어른들의 교훈을 일깨워줄 것이다. 결국 빈털터리 웨이터가 두뇌를 겨누는 퀴즈쇼에 참가해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두뇌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신체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손발만을 사용해야 하는 천민이다." 슬럼독 청년은 그러나 자신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워치독은 태생이 권력을 보고 짖게 되어있다.
아무튼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원작 만한 영화 드물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원작도 영화도 잘 만든 작품이다. 원작의 내용을 상당히 바꿨지만 영화도 그 자체로 뛰어났다. 퀴즈 문제 13개의 답이 곧 고아 출신 청년이 경험한 인생 그 자체에 있었다는 발상, 그 상상력이 신선하고 놀랍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지켜야 할 것들, 용기와 양심과 사랑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인도의 현직 외교관인 원작 소설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는 거기 더해 운명이라는 요소를 주인공 청년의 삶에 얹어놓는다. 청년이 때로 괴롭고 때로 유머러스한, 불행의 나락에 빠졌다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았고, 퀴즈쇼에 나가 백만장자가 되는 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다. 경찰에서 풀려난 뒤 소년은 늘 지니고 다니던 행운의 동전, 앞뒤 양면이 다 앞면인 행운의 동전을 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이 동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 이 말에 이 작품의 전언이 있다.
좋은 글귀 하나씩 뽑아 서울 교보문고가 광화문 본점 빌딩에 내거는 현수막에 얼마 전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적혀있는 걸 봤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 날'. 슬럼독 인도 청년은 19년을 늘 새 날로 살아, 아침에는 없던 운명을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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