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로부터 330억 파운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프레드 굿윈 전 행장의 에든버러 저택이 25일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주택 창문 3장과 차고 앞에 주차되어 있던 고급 승용차 벤츠 S600의 유리창이 깨졌다.
RBS가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지난해 10월 매년 70만 파운드의 연금을 받기로 하고 물러났던 굿윈은 영국 국민의 연금 반납 요구를 거부해 공분을 샀다. 범행을 했다고 밝힌 익명의 단체는 지역 신문에 보낸 이메일에서 "모든 은행장은 범죄자다. 이것에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기업 임원이 거액의 보너스를 수령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대중의 분노가 과격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가택 파손과 무차별적인 살해협박이 잇따르면서 사설경호업체를 고용하는 기업 임원이 급증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지난 주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 최대 보험사 AIG의 에드워드 리디 회장은 회사 임원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1,800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으면서도 일부 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보너스를 받은 임원에게 전달된 이메일에는 "가족이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피아노 줄로 목을 매달아 살해하겠다" 등 노골적인 협박이 담겨있다. 월스트리트의 한 은행 임원은 "군중심리가 정말 두렵다. 경제상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면서 우리가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려움을 느낀 기업 임원들은 일반시민과 정리해고 당한 직원, 괴한 등에 의한 기습 테러에 대비해 사설경비업체를 찾고 있다. 굿윈은 퇴직 후 개인 경호원을 고용했고, 협박에 시달리는 AIG 임직원도 현재 사설경비업체의 보호를 받고 있다. 파산한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지미 케인 전 회장도 최근 보디가드를 고용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경호업체는 최근 수요가 30% 증가했다고 밝히는 등 경호산업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경비업체 크롤의 보안컨설턴트 에덴 멘덜은 "이 같은 종류의 대중의 분노는 본 적이 없다. 보너스를 받은 임직원들이 TV에 등장하는 순간 그들은 곧 표적이 된다"며 "그들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내달 2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런던에도 비상이 걸렸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시위대와 무정부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조짐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은행원을 화형시켜라"는 메시지를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경찰은 은행 임원들에게 "출근할 때 수수한 옷을 입고 고급차는 몰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진 자에 대한 분풀이식 대응이 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굿윈의 이웃인 앤드루 매킨토시는 "그가 잘못했다고 해도 이런 공격까지 받는 것은 부당하다. 진심어린 사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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