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 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은 피었어라/ 나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음은/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음은/ 내 안에 가득 사랑이/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퇴근 길 버스 안에서 처음 들었다. 우선 가사가 귀를 파고 들었고, 이어 아늑하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때렸다.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도 한참 아물아물하다가 노래가 끝날 무렵에야 "맞아, 이미자야" 하고 깨달았다. 2002년 평양 공연 때 언뜻 답답하고 갈라진 듯했던 목소리가 시원하고 매끄럽게 바뀌어 있었다.
■데뷔 50주년의 노래 인생이 담긴 <내 삶에 이유 있음은> 을 들으며 일본의 국민가수였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강물이 흐르듯> 을 떠올렸다. '울퉁불퉁한 길, 구불구불한 길/ 지도조차 없는 그 또한 인생/… 끝없는 이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꿈을 찾으며/ 비에 젖어 질퍽거리는 길이라도/ 언젠가 다시 맑게 갠 날이 올 테니/…아, 강물이 흐르듯 평온하게/ 이 몸을 맡기고 싶어/ 아, 강물이 흐르듯 언제까지나/ 푸른 시냇물 졸졸대는 소리 들으며.' 데뷔 40주년인 1989년 세상을 뜨기 직전에 내놓은 이 노래도 '인생'이 주제다. 강물이> 내>
■두 사람은 어딘가 닮았다. 이미자가 4년 늦게 태어났고, 가요계 데뷔도 10년이 늦었지만 여성으로서 결코 순탄했다고 보기 어려운 젊은 시절, 양국의 경제부흥기에 국민의 애환을 어루만져준 국민가수로서의 지위 등이 비슷하다. 이름에 아름다울 '미(美)' 자를 넣은 것도 같다. 다른 점도 많다. 음색부터 다르다. 이미자가 유리라면 미소라는 간유리다. 이미자는 좁은 음역으로 맑고 고운 떨림을, 미소라는 넓은 음역에서 깊은 떨림을 들려주었다. 이미자가 주로 가슴 저미는 애잔함을 노래했다면, 미소라는 흐릿한 쓸쓸함을 여유롭게 노래했다.
■미소라는 53세를 일기로 일찍 세상을 떴다. 반면 이미자는 데뷔 50주년 기념 음반을 발매하고, 다음달부터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서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노래에 쏟고 있다. <내 삶에 이유 있음은> 에서 노래를 존재이유라고 선언한 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목소리가 깊고 넓어져 듣기에 편해졌고, 트롯 일변도에서 벗어나 장르를 확대할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대중가수에게 처음으로 수여된 문화훈장 2등급 '은관'이 그에게 새로운 활력제가 되길 기대한다. 10년 뒤 데뷔 60주년 공연에는 꼭 가야겠다. 내>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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