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청국장집엔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때의 대형 텔레비전이 아직 걸려 있다. 한참 구형이 된 대형 텔레비전은 그 가게의 주인과 주요리가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가게의 몇몇 비품들과 함께 물림이 되었다. 그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2002년 월드컵 때로 돌아간다. 시청 앞 광장은 물론이고 거리 곳곳이 온통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파트 부녀회에서도 이동 텔레비전 차를 대여했다. 축제가 따로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기억은 내게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축구를 싫어했냐고? 물론 아니다. 단지 그때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월드컵도 조용히 보고 응원도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붉은 티셔츠를 구해 입고 얼굴에 페인팅까지 한 동생들이 애와 합세해서 수시로 방문을 열고 나가자고 졸라댔다. 결국 혼자 집에 남았다.
베란다에 서서 25층 아래로 펼쳐진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자동차들까지 몰아낸 주차장은 빨간 셔츠를 입고 모여 앉은 사람들로 얼룩덜룩했다. 왠지 다 자장면 시키는 데 혼자 짬뽕 시켜놓고 기다리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주방에선 따로 한 그릇 시킨 짬뽕 만드느라 성가셨을 테고 나는 다들 자장면을 먹고 있는 동안 낡은 중국집에 걸려 있던 알랭 들롱의 화보나 보고 있었다. 고독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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