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최근 막을 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에 밀려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다. 특히 김인식 감독은 이승엽 등 주축 선수들이 불참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믿음 야구'을 펼치며 당초 목표인 4강을 넘어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적으로 국민 감독이란 명성을 다시 한번 각인 시켰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중소 기업계에 미치는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도산과 줄폐업으로 붕괴 직전의 중소 기업계는 많은 실직자들을 양산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처한 국내 중소 기업계에 과연 위기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해 관계자들(정부ㆍ금융권ㆍ대.중소기업 등) 사이에 만연된 '불신' 해결에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WBC에서 김 감독이 보여준 '믿음 야구'가 세계를 놀라게 하며 위력을 떨친 것처럼.
인터뷰=이종재 국차장 겸 경제부장
-중소 기업들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늘 현장을 찾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국내 중소 기업계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요.
"1월 현재 중소 기업들의 공장 가동률은 62.6%로,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동률 80% 이상의 정상 가동 업체는 4곳 중에 1곳에 불과합니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에요. 예전에는 내수가 안되면 수출이 잘되고 수출이 안되면 내수가 잘 되는 업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양쪽 모두 최악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만 있지는 않을텐데요.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여파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각 중소 기업들은 '우리가 만든 제품이 언제쯤이나 제대로 팔릴 수 있을지 예측이 안 된다'는 데에 가장 큰 문제가 있어요. 결국 중소 기업들의 숨통이 뚫리기 위해선 내수 진작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정부는 지금 유동성 대책을 포함해 과거에 비해 파격적인 중소기업 지원책들을 내놓고 있는데요. 하지만 정작 중소 기업 현장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에서 방향은 잘 잡았다고 봅니다. 실제 현장에서 요구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소 기업들이 피부에 와 닿게 하는 부분에선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소위 '돈맥경화'라는 것도 그래서 생기는 건데요. 정부에서 제시한 유동성 자금을 은행권에서 원래 취지에 맞도록 자금난에 빠진 각 중소 기업들에게 제대로 분배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중소 기업들은 대놓고 직접 불만을 표시할 순 없습니다. 아무래도 은행이 중소 기업들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있잖아요."
-현장에서 정부의 지원을 실감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집행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신뢰'입니다. 은행들이 중소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되돌려 받지 못할 경우가 생길 것 같으니까, 은행 자금이 묶여 있는 거죠. 결국 중소 기업들을 못 믿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은행들도 중소 기업들이 망하면 누구를 상대로 영업을 할까요?
불황이지만 장래성있는 중소 기업들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은행들이나 기업들 모두 공멸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기업이 잘못해서 어려운 게 아니고, 경기가 어려워서 모두 곤경에 처한 상황이잖아요. 이젠 은행들도 사회적 책임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현안 중에 키코(KIKO) 문제도 빼놓을 수는 없는데요.
"우선, 기업들이 키코에 가입하게 된 동기부터 살펴봐야 해요. 키코의 가입 조건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대부분의 중소 기업들은 키코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외국에선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할 때, 고지의 의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은행들은 충분히 고지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믿을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키코가 은행권에서 당초 주장했던 대로, 좋은 상품이었다면 지금은 왜 활성화가 안되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됩니다. 더구나 키코에 가입한 중소 기업들은 신용등급 'B' 이상인 기업들이 많아요. 수출 우량 중소 기업들이 키코 때문에 망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은행권에서 상당부분 책임 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개성공단과 관련, 현지 입주 기업들이 최근 북측이 육로 차단과 통?조치 등을 번갈아 가면서 인력 수급을 포함해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존폐의 기로에 놓인 개성공단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개성공단이 설립될 당시, 표명했던 것처럼 무엇보다 정ㆍ경 분리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개성공단은 남북 당국 모두가 정치적인 관점보단,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핵이나 미사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단순히 기업 경영에만 충실하게 임하게 해줘야 합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현재 조업 중단과 더불어 납품 지연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북측은 개성공단을 정치 쟁점화 시켜 볼모처럼 여기는 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현지 인력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줄기차게 요구했던 기숙사 문제 해결을 도와줘야 해요. 남과 북이 서로 믿고 상생하면 개성공단은 황금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정치적ㆍ군사적 개입이 없고 통행 및 투자 등이 자유로운 '남북경제특별지구'로 지정하는 방안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소기업 지원과 관련, 정부에 건의할 사항과 중소기업중앙회의 향후 중점 추진 사업 및 계획은 무엇인가요?
"획기적인 내수진작 대책 마련과 유동성 확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점검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위기에 취약한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각별한 대책 마련도 절실합니다.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중소기업중앙회는 올해 협동조합의 활성화에 좀더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업종의 권익이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거든요.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을 반영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울러 가업승계 세제개편과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및 시스템 개편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 김기문 회장은
1955년 충북 괴산출생인 김회장은 1988년 시계 업체 '로만손'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 3월부터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권익을 대변하고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ㆍ기업, 대ㆍ중소기업간 가교역할을 무난히 수행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 사업승계 상속세 감면과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법인 처벌 시 법인 대표까지 이중으로 처벌하는 양벌 제도 개선, 접대비 실명제 폐지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사항 등을 정부 및 지자체 등에 전달하기 위해 2월부터 '중소기업 현장 점검단'을 운영하며 직접 발품을 팔고 있다. '잡셰어링'(일자리 만들기)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부터 '1사 1인 고용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올해 2월에는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등이 자발적인 임금 삭감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2005년에는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했으며, 그 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모임인 '개성공단 기업협의회'를 창립해 지난해 상반기까지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혀재경기자
中企 경영애로 해결 역할, 소상공인 사업재기도 도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중앙회는 47년의 역사(전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지닌 우리나라 중소 기업인들의 본산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의해 1962년 설립된 법정경제단체로, 전국에 950개의 협동조합을 두고 있다.
중앙회의 핵심업무는 단연 '중소기업의 경영애로 해소와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의 조직화를 통한 권익 보호와 경제현안에 대해 중소 기업인들의 실태를 점검하고 정책대안을 발굴해 이를 정부에 건의한다. '중소기업금융신고센터'는 중소기업의 경영애로를 수렴해 금융감독원과 연계, 해결방안을 찾는 역할을 하고있다.
또한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소상공인 경영안정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경련과 공동으로 '구두발주 금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하도급거래 분쟁조정,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 개편, 대형 마트 확산 제한 등도 병행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의 연쇄도산 방지와 경영안정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공제사업기금을 운용하고 폐업 등의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의 사업 재기 지원을 위한 '노란우산공제사업'도 운용 중이다.
정리=허재경 기자 ricky@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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