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에서만 한국과 일본의 만남이 잦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일상 속에 일본이란 참으로 가까운 존재다. 서울 거리에서, 안동 하회마을에서, 부산 해운대서, 담양의 소쇄원에서 그들을 만나는 일은 이미 일상이다. 일본 사람들의 일상 속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음식과 노래가 넘치고 텔레비전 속 한국 연예인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야구 때문에 혹은 엔고 탓에 혹은 한류 탓에 한국과 일본의 일상을 들먹이고자 함은 아니다. 내년을 위한 언론의 분발을 촉구하고자 함이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10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서로 주고 받았다. 하지만 일본 야구선수 이치로가 말했던 것처럼 '헤어진 연인' 같이 어색하기만 하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숙제가 너무 많은 탓이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계산 속에는 한국이 들어가 있지 않다.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음에도 그들은 한국과는 전쟁을 했다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들어오면 그 계산법은 터무니없다는 대우를 받는다. 독립군, 광복군의 광복을 위한 지난한 전쟁이 있었음을 두고 두고 기억해낸다.
전쟁의 일환으로 무력으로 나라를 침탈했으며 그 침탈의 죄과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고 그럴 의도도 없는 일본을 정확하게 기억하려 한다.
지난 100년을 정리하는 일은 그 기억 간 간극에 대한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들추어내 기억의 정확성을 따지자는 작업과는 달라야 한다. 새로운 100년을 위한 과거 정리 작업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내 지식생산 제도들이 더 많은 분발을 해야 한다.
학계에만 그 소명을 국한할 수는 없다. 사회 내 주요 지식생산 장치인 언론이 그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더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더 많은 지혜들을 모아 지난 100년 간 관계를 규정하고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제안을 쏟아내야 한다.
WBC의 중계권을 둘러싸고 보여주었던 노력의 몇 배 되는 정성을 언론이 쏟아야 할 때다. 하지만 언론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아 우울하고 걱정스럽다. 더 많은 특집을 위한 경비 마련도 만만찮고 내년을 고민하고 더 먼 미래를 고민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답변을 더 많이 대한다.
생존을 위해 경비 절감을 해야 한다는 답변,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많다는 답변, 역사가들의 답을 중계하는 것으로 마감하면 된다는 답변들이 돌아올 뿐이어서 우울하다.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의 언론들은 8월 저널리즘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8월 저널리즘은 평화를 기원하는 기사들로 넘치고, 패자로서의 안타까움을 전하는 일로 분주하다. 그 어디에도 침략의 기억을 전하지 않는다. 침략의 역사를 은폐한 8월 저널리즘에 한국, 종군위안부, 징용, 징병에 대한 기억이 담길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냥 한국은 한류를 만드는 곳, 분명하지는 않지만 과거 한번 사귀었으나 헤어진 어색한 연인 정도로만 남게 된다. 지식생산 장치인 학문,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결과다.
독도 문제만 나오면 분기탱천하는 한국 언론으로 그치진 말아야 한다. 100년이라는 이정표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언론이지 말았으면 한다. 게으르거나 정직하지 못한 지식생산 장치들 탓에 우경화의 나락에서 헤매며 자신들의 고난만 기억하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언론의 재정적 어려움을 알면서도 야구에 보여준 열정의 100배를 쏟아주기를 당부하는 것은 한일 관계 앞으로 100년이라는 미래의 소중함 탓이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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