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정부가 내놓은 중기 국가재정 운용계획.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2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30% 수준으로 낮추고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감세를 통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예산 절감과 지출 효율화를 통해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자신했다.
불과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 돌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균형 재정은 커녕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는 처지가 됐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재정 악화의 깊은 수렁에 발을 담근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28조9,000억원에 달하는 이번 추경의 재원은 대부분 국고채 발행을 통해 조달된다. 지난해 세계잉여금(2조1,000억원), 기금 여유자금(3조3,000억원), 기금 차입금(1조5,000억원) 등 긁어 모을 수 있는 자금을 총동원했지만, 그래도 22조원의 국고채를 발행해야 한다. 추경 전체 규모의 76%에 달한다. 적자국채 발행 물량도 당초 19조7,000억원에서 36조9,000억원으로 대폭 불어났다.
대규모 국채 발행에 따라 나라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번 추경 편성에 따른 국가 채무는 총 366조9,000억원. GDP 대비 38.5%까지 치솟았다. 작년 국가 채무 308조3,000억원(32.5%)과 비교하면 무려 58조6,000억원이 불어났고, 올해 추경 편성 이전과 비교해도 17조2,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재정수지 악화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대상수지가 16조6,000억원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 적자 폭은 더욱 확대된다. 추경 편성에 따라 올해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24조8,000억원에서 51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 특히 GDP 대비 관리대상 수지 비중은 마이너스 5.4%로 환란 당시인 1998년(-5.1%)을 넘어서는 사상 최악을 기록하게 됐다.
정부는 여전히 선진국과의 비교 수치를 들이대며, "아직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 사회보험 확대, 그리고 남북협력 관련 지출 소요 등을 감안하면 선진국과 단순 비교는 무리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재정 건전성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견해가 나온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넘어서면 최후의 보루인 나라살림이 붕괴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더 이상 재정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일 수 없게 됐다"며 "부자감세 중단, 예산 절감 등의 재정 건전성 확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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