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키아바라에 가면 최근 열풍을 일으키는 '이모바일'이라는 통신 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USB 형태의 기기로 노트북에 연결하면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도 요란해서 들여다보니 2년 약정을 하면 노트북을 1엔에 준다는 캠페인이다. 한 마디로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면 노트북이 그냥 생기는 거다.
이제 노트북도 휴대폰처럼 공짜 시대가 오는가 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온 노트북들이 모두 일류 브랜드 제품이다. 물론 성능과 브랜드에 따라 약간의 가격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격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옆에서 바이러스 백신 제품을 정가대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업을 하는 지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하드웨어를 무상으로 주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판매하는 모델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고객들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지 하드웨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에 바로 이웃 나라인 우리는 어떠한가? 하드웨어는 제 값 주고 사면서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얻거나 불법적으로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후진적이지 않은가?
최근 정보기술(IT)의 뚜렷한 동향은 통신비와 하드웨어 단가가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통신과 하드웨어에 기반한 사업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반인이 무료로 이용하는 검색, 메일, 웹 플랫폼은 전반적인 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업 환경이 얼마나 IT와 접목될 수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정보화와 산업 그리고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은 소프트웨어의 몫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IT 기술자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인간 사회에서 정보가 소통되게 하고, 나아가 문화와 규범, 소통 방식, 업무 환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동화와 생산성으로 대표되던 소프트웨어의 특성이 창의력과 지능적 판단으로 확장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하드웨어적 사고에 기반해 이룩한 과거의 성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과정이 그러했고, 산업적 성장도 그러하다. 분명 이것은 한국인이 만들어 낸 자랑스런 역사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결과 일체감을 넘어서 소프트웨어적 사고를 기반으로 유연성과 합리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진국이 되는 기준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우리 삶 속에 자리잡게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문화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