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추가경정예산 규모는 28조9,000억원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차 추경액(13조9,000억원)의 2배가 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추락하는 경제현실 앞에서 이른바 ‘슈퍼 추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많았다.
이번 추경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개인 기업 등 민간부문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돈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정부 뿐이다.
정부는 추경을 통해 1.5%포인트 이상의 성장률 제고, 55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경제해빙 기류가 형성돼 규제완화와 민간투자 확대 등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올해 마이너스 성장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습이다.
내용도 비교적 알차다. ▦저소득층 지원 ▦일자리 대책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등 대부분 불요불급한 내용들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예산 편성의 고질적 병폐인 ‘끼워 넣기’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번 추경은 ‘기회비용’도 크다. 바로 재정악화 문제다. 슈퍼추경을 편성한 탓에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5%까지 치솟게 됐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75.4%)와 비교하면서 아직 여유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 견해는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재정사회개발연구부장은 “고령화나 통일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국가채무비중이 더 확대된다면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번 추경은 마이너스 2% 성장을 전제로 짠 것인데, 현재로선 여기서 더 떨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면서 추가추경 편성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적자재정 편성으로 대량 발행될 국채를 시장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까스로 올해 국채 발행물량을 100조원 이내(91조2,000억원)로 묶었지만, 그래도 작년의 두 배 규모다. 물량 과다에 따른 금리상승, 회사채 발행 위축(구축효과) 등 부작용도 걱정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추경 자체를 너무 가볍게 본다는 점이다. 추경은 재정예측 실패의 결과인데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불가피성만을 강조할 뿐, 자기 반성이 전혀 없다.
지난 해 주먹구구식 예산 편성을 하지 않고, 일자리대책을 수정예산에 담았더라도, 또 무리하게 감세만 추진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추경규모는 많이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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