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주최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번 WBC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며 잔치 분위기지만, 어처구니없는 대진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은 대회가 열리는 20일 동안 무려 5차례나 맞대결을 벌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아니라 '한-일 베이스볼클래식'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대회에서 7승2패의 성적으로 우승한 일본은 7승 중 3승을 한국을 상대로 거뒀다. 준우승팀 한국 또한 6승 가운데 2승이 일본을 상대로 얻은 승리다. 또 3패는 모두 일본에 진 기록이다.
'더블 엘리미네이션' 제도라는 해괴한 방식은 4승3패의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둔 미국을 준결승까지 오르게 했다. '강팀의 조기 탈락을 방지해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지만, 오히려 메이저리거들로 '핵타선'을 구축한 도미니카공화국은 본선조차 밟지 못했다.
당초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WBC를 개최한 건 야구 최강국을 가리기 위함도 있지만, 축구의 월드컵처럼 전세계적인 저변 확대도 큰 목적 중 하나였다. 물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WBC를 즐기긴 했지만, 정작 미국의 열기는 미지근했다.
스타 플레이어들은 부상을 우려해 대표팀 승선에 난색을 표했고, 현지 팬들은 자연히 대회를 외면했다. 미국팬들은 WBC를 즐기기보다 자신이 응원하는 메이저리그 팀의 시범경기를 보러 갔다. 미국의 야구팬들은 WBC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운영하는 초청경기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자구책으로 마련한 게 라이벌로 알려진 한국과 일본의 반복 대결이다. 한인들과 일본인들이 밀집한 캘리포니아주에서 경기를 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수지 타산을 맞추긴 했다. 그러나 우승과 준우승의 기쁨과 함께 "지겹다"는 반응이 빗발치는 이상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구조로는 대회의 지속을 낙관하기 힘들다.
로스앤젤레스=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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