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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보한나라당, 보수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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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보한나라당, 보수민주당

입력
2009.03.25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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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원이 민주당원에게 하는 말. "너희는 늘리고 키우는 데만 관심있지?" 이어지는 민주당원의 반박. "너희는 무작정 줄이고 깎는 데만 골몰하잖아!"

미국에서 보수와 진보,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엔 좀처럼 타협하기 어려운 의제들이 있다. 낙태, 총기규제, 그리고 정부사이즈(재정)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선 대통령선거가 끝났음에도,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중인 천문학적 재정지출정책에 대해 공화당은 시종 '노(No)!'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공화당의 반대를 대선패배의 분풀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간곡한 초당적 협력호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재정지출법안에 단 1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점, 그리고 현재 의회 제출된 예산안 역시 강력 반발하고 있는 점 등을 상기해보면, 그냥 정치공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 공화당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일이 정말로 싫은 것이다. '시장실패 보다 정부실패가 훨씬 나쁘다'고 믿어온 그들로선, 아무리 경제 위기라 해도 재정적자에 기반한 팽창예산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도 지금 비슷한 논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미국과는 정반대로, 보수(한나라당)에서 재정지출확대를 주장하고 진보(민주당)에선 반대하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가 24일 확정한 추경규모는 약 29조원. 이 자체만으로도 '슈퍼 추경'이지만, 한나라당은 당초 더 파격적 재정지출을 기대했다. 40조~50조원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현 경제 여건상 재정확대가 정답 임엔 틀림없지만, 그래도 보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에서 '더 큰 재정'을 주장하는 것은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집권 여당이니까 그랬을 것이다. 또 지금이 보수ㆍ진보를 따질 때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10년 야당시절 내내 그토록 국가채무증가를 우려해왔고, 그래서 추경편성을 제한하는 국가재정법도 만들었고, 결국 '작은 정부'의 기치를 내걸고 집권한 한나라당이 하루 아침에 재정 확대쪽으로 돌변한 것은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아무리 경제위기라도 '가치'는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행정부라면 몰라도 정당은 그럴 수 없다. 진정 보수가치를 소중히 하는 정당이라면 재정확대에 대해 적어도 치열한 당내 토론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유권자들에게 입장 변화과정을 설명했어야 옳지만, 한나라당은 그러질 않았다.

추경삭감을 주장하는 민주당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깎는 게 야당의 본분이라 해도 집권시절 보여준 민주당의 진보색채로 봤을 때, 당연히 한나라당보다 과감한 재정지출을 요구해야 정상이다.

물론 하나의 잣대로 왼쪽과 오른쪽을 갈라선 안되겠지만, 적어도 재정정책의 렌즈로 본다면 한나라당이 진보, 민주당이 보수처럼 느껴진다. 이게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 역시 우리나라 정당에선 '가치'는 멀고 '정치'만 가까울 뿐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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