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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닭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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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닭둘기

입력
2009.03.25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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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보통 4~5월에 한두 차례 알을 낳는다. 다른 새들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면 벌레를 잡아서 먹이지만 비둘기는 다르다. 비둘기는 알을 낳으면 알이 부화할 때까지 모이주머니가 발달하게 되는데, 이 모이주머니에서는'피존 밀크'(pigeon milk)라는 분비물이 생산된다. 암수가 모두 생산하는'피존 밀크'는 포유류의 젖과 화학적 성분이 유사하다. 알에서 부화한 비둘기 새끼들은 이 영양 만점의 밀크를 먹고 자란다. 그러다 보니 초기 성장속도가 다른 새들보다 빠르다. 비둘기는 포유류처럼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것이다.

▦야생 비둘기와 달리 도시 비둘기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평균 대여섯 차례나 알을 낳는다. 원인은 인간이 던져주거나 버린 과자 부스러기와 음식물 쓰레기. 염분이나 지방 등이 많이 함유된 과자류, 튀김류 등을 먹다 보니 과영양화 상태가 되고, 급기야 산란기도 잊은 채 이상 번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몸무게가 늘어나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푸드덕거리기만 하는 '닭둘기'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산성을 띠는 배설물 양이 늘어나면서 시민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도심 건축물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 각국은'닭둘기' 퇴치 아이디어 짜내기에 바쁘다.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면 벌금을 부과한다. 파리시는 대형 비둘기 집을 설치한 뒤 주기적으로 집을 흔들어 알을 부화하지 못하게 한다. 스위스 바젤시는 공공건물에 비둘기 집을 지어 비둘기들을 유인한 뒤 알을 낳으면 제거한다. 이들 국가나 도시는 과거 포획ㆍ살처분 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먹이 공급을 차단하거나 부화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선회, 비둘기 개체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영국 미국이 비둘기에게 불임약을 먹인 적이 있지만 개체수 감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대홍수 때문에 150일 동안 방주 속에 갇혀 있던 노아와 동물들에게 세상에 평화가 왔음을 알려줬던 비둘기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데는 사람 탓이 크다. 관리 대책도 없이 큰 행사 때마다 수천 마리를 도시에 풀어놓을 때부터 '닭둘기'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됐다 해서 무작정 포획해 제거할 일이 아니다. '닭둘기'를 원래의 비둘기로 되돌리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둘기가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되어서야 되겠는가.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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