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을 방문한 스페인의 펠리페 왕세자와 레티시아 왕세자비는 사실 은밀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스페인 기업들이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부양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7,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관련 사업에 참여하려는 외국 기업의 로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 보도했다.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 사업이 대체 에너지와 첨단기술 개발,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집중돼 있는 터라 이들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로서는 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도 미국 기업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지닌 외국 기업의 참여를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의 알카텔 루센트는 초고속 인터넷망 확충에 배정된 72억달러의 경기 부양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철도ㆍ도로망 확충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캐나다의 봄바이어와 프랑스의 알스톰, 유료도로 건설 전문 기업인 오스트리아의 트렌스어반그룹도 마찬가지다. 대체 에너지 분야도 외국 기업이 눈독 들이는 분야다. 태양열 발전 패널을 생산하는 일본 산요의 북미 법인은 경기 부양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최근 정식 로비 기관으로 등록했다.
외국 기업의 참여 여부는 '바이 아메리카' 조항까지 신설하며 자국 산업 보호를 추진하는 오바마에게 또 다른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실업 해소와 소비 진작을 위해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는 오바마 정부가 외국 기업에게 문을 열어 주면 국민적 반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아랍 에미리트 기업이 뉴욕 등 미국 내 6개 항만의 운영권을 인수했을 당시 국민적인 분노가 거셌다. 한 무역 전문가는 WP에 "외국 기업이 경기 부양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이익의 최대 40%를 미국 영토 밖으로 반출할 수 있다"고 말해 미국의 경기부양 자금이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의 대변인인 엘리자베스 알렉산더는 WP에 "경기부양책의 목적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고 정부는 이를 실행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기업의 로비를 담당하는 맥스 샌들린은 "경기 부양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외국 기업은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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