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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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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기록

입력
2009.03.2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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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대체 서기(書記)된 자로서의 책무란 얼마나 성가신 일인가 언젠가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코끼리떼를 흰 종이 위로 건너오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숫자, 나이와 성별, 엄니의 길이와 무게, 무리의 지도자 습성, 이동 경로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의 길고 주름진 코로 노획한 물건들 - 옷핀, 인형, 가발, 빈 콜라병, 탐정용 돋보기, 야구 사인볼, 샌들 한 짝, 담배 파이프, 테러리스트의 복면 등, 온갖 문명의 잔해들도 자세히 적었다

그들의 다리는 굵고 튼튼하다 포도주를 짓이겨 대지의 부은 발등에 붓고 거친 나뭇가지와 뿌리를 씹어 엽록의 공장을 돌리고 낫처럼 휘어진 거대한 비뇨기로 곡식을 베어 눕힌다

그들에게 실향이란 없다 황혼이 오면 그들은 목울대를 움직여 그들이 사랑하는 악기, 튜바의 삼각주로, 전 세계로 흩어진 천 개의 코끼리강을 부른다 달콤한 무릎 관절의 샘이 흰개미를 불러모으듯, 다이아몬드 광산이 총잡이를 부르듯,

홍해가 갈라지는 아침, 찢겨진 범선 같은 귀를 펄럭이며 한 무리의 대륙이 새로운 길을 찾아 천천히 이동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코끼리는 코끼리의 방식대로 그들의 존재를 기록하니 인간은 읽어볼 도리가 없다. 코끼리의 역사가 궁금한 시인은 직접 코끼리의 역사를 적는 사관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인간의 사관이지 자연의 사관이거나 다른 종의 사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사관의 삶은 사마천의 세계에서 헤로도토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현실 기록하기와 환상 지어내기,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현(弦)의 세계. 어떤 사관인들 현실에서 환상을 짚어보고 환상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싶지 않을까?

시인은 코끼리 역사의 사관이 되어 역사의 뒤안에서 부스러지고 망가지고 그리고 빛나는 존재들의 비의(秘意)를 기록한다. 얼마나 아플까, 비의의 사관이 되어 역사 속을 헤메는 시인은.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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