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에 보인 종잡을 수 없는 행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군 통신선 차단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침전쟁연습' 기간이었으니 그렇다 치자. 남측 민항기의 영공 통과를 막고, 개성공단 통행 차단과 재개를 세 차례나 되풀이한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대외적으로 긴장도를 높여 내부 결속을 꾀한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남전략에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도와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파행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응답이 72.2%에 이른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정부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이 성공하고 있다며 쾌재를 부를 법도 하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다는 기대도 흘러나온다고 한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검토,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 최근 일련의 거침 없는 대북정책은 그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이 과연 좋기만 할까.
무대에서 사라진 남북대화일꾼
지난해 말부터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측의 대남 강경조치에는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초 이명박 정부에 기대 섞인 관망자세를 취했던 북측은 지난해 4월1일 노동신문 논평을 시작으로 전면 비난공세로 전환했다. 그 즈음 노무현 정부 시절 대남관계 전면에 나섰던 권호웅 내각참사, 최승철 부부장 등이 일선에서 밀려났다.
정운업 민경협회장, 주동찬 중앙특구 개발총국장 등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에 깊숙이 개입했던 인사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비리 숙청설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 및 정세를 잘못 판단한 책임을 물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이름은 8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서도 사라졌다.
북측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남 강경 자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 내에 군부 안팎의 강경파가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담과 접촉을 통해 남한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인 인사들이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밀려난 것이 확실하다면 남북관계에 큰 손실이다.
권호웅, 최승철 등은 김용순ㆍ임동옥 전 통전부장, 송호경 전 내각참사 등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대화와 협력을 주도했던 거물급 인사들이 사망한 뒤 성장한 세대다. 북한 내부에서 이들의 목소리와 입지가 작아지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키 리졸브 훈련 기간 북측이 보여준 어설픈 강경 대응은 남한을 이해하는 인사들이 배제된 채 군부 강경세력이 상황을 주도한 결과일 개연성이 크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한 권력구조 안에서 군부를 포함한 강경세력의 입지가 약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앞으로도 내달 초로 예정된 광명성 2호 발사, 8월 남한의 을지훈련 등 북한 내 강경파를 부추길 소재만 수두룩하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 성공인가
철저한 1인지배체제인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남한 등 외부세계와 많은 접촉을 갖고 대외협력 마인드를 갖춘 인물들이 늘어나는 경우이다. 이명박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성장한 남북협력 세력의 입지를 좁히고 대신 강경파 득세의 결과를 가져왔다면 평가가 전혀 달라져야 한다.
원칙으로 북한의 변화를 끌어낸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개성공단 통행 중단 사태에서 봤듯이 강경세력이 득세할수록 북한의 버릇은 더 나빠지게 돼 있다.
다행히 북한이 개성공단 왕래를 일단 정상화하고 민간인의 방북 허용을 재개했지만 최근의 기류로 봐서 언제 또 중단될지 알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그리고 민간인 왕래도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북간 관계 제로의 상황이 이명박 정부 임기 끝까지 계속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도 괜찮을까.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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