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나돌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통 큰' 로비 스타일이 검찰 수사에서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받은 돈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 집무실 안 대형 금고에 항상 3억~5억원의 현금이 준비돼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수사팀은 은행에서 3억원을 빌려 직접 박 회장의 금고 안에 돈을 넣어보는 특이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문제의 금고는 준비한 3억원을 다 채우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검찰은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할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이 장면을 촬영해 추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박 회장은 부산ㆍ경남 지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뛰어난 현금동원 능력을 갖춘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200억원을 벌면 100억원을 쓰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박 회장은 현금 제공이 여의치 않으면 상품권을 대량으로 건네기도 했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재직할 때인 2004년 12월 박 전 수석에게 액면가 50만원 짜리 백화점 상품권 200장을 건넸다. 상품권은 물품 구입시 편하게 쓸 수 있고 현금이나 수표보다 받을 때 심적 부담이 덜해 청탁로비에서 현금 대신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박 전 수석 역시 이 상품권 대부분을 물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나이키'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의 오너답게 박 회장은 고급 운동화를 정치인들에게 선거구 관리에 쓰라며 주기도 했다. 2005년 1월 민주당 이광재 의원의 보좌관 등 3명이 지역구에 운동화 400여 켤레(시가 5,000여만원)를 돌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영월군선관위에 고발당했는데, 이 운동화는 바로 박 회장이 제공한 '협찬품'이었다는 얘기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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