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주요 갈래 중 하나는 박 회장 자신의 구명을 위한 금품로비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서 박 회장이 광범위한 구명로비를 벌인 사실과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7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곧바로 현 정권에 영향력이 있는 인사 10여명에게 긴박하게 접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금까지 혐의가 확인된 사람은 23일 구속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1명이지만, 현 정권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 변호사,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고려대 교우회장) 등이 로비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이 박 회장의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고 국세청이나 검찰에 구체적인 로비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현 정권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통 큰 박 회장이 구명로비를 위해 수백억원의 현금을 준비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박 회장이 국세청 세무조사에 이처럼 민감하고 강하게 반응했던 것은, 세무조사 선에서 끝나지 않고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박 회장은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를 통해 추 비서관에게 돈을 전달했는데, 정 대표는"비자금이 발견되면 회장님이 검찰에 고발돼 구속될 테니 검찰에 고발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박 회장으로선 구속 만은 피해보자는 다급한 심정에서 전방위 로비에 나섰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종찬 전 수석과 천신일 회장 등은 박 회장의 구명을 위해 지난해 7월 대책회의까지 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수석은 특히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개업 보증금 5억여원을 박 회장한테서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실제 구명로비에 적극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수석은 이에 대해 "나는 동생한테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이 박 회장의 돈인 줄은 몰랐다. 나중에 모두 갚았다"고 해명했다.
박 회장은 국세청 세무조사가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지자,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 관계자들에게도 손을 뻗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가 박 회장에 대한 수사정보를 흘리거나 수사 무마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상당수 검찰 고위 간부가 박 회장과 친분을 유지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의 구명로비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로비"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 과정에서 대가성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로비가 실패했더라도 부당한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면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추 전 비서관이 국세청 간부들을 상대로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최근 해외 출국이 이번 수사와는 관련이 없다면서도 필요할 경우 조사가 가능하도록 연락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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