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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김정일 사진과 북한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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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김정일 사진과 북한 '바로 읽기'

입력
2009.03.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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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이 난무할 때, 영국의 정치원로 데이비드 오웬이 그 몇 달 전 출간한 저서 <병든 지도자(in sickness and in power)> 를 <지평선> 칼럼에 소개한 적이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 출신으로 1970년대 말 외무장관을 지낸 오웬은 20세기 세계 지도자들의 질병이 국내외 정책에 미친 영향을 다룬 책에서 "지도자의 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보수신문 '의학적 분석' 돋보여

논란할 여지가 있는 결론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1984년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장례식에서 후임 체르넨코의 건강상태를 직접 목격하고 나름대로 진단한 대목이다. 당시 73세로 병약한 체르넨코는 레닌 묘소 계단을 혼자 오르내리지 못하고 부축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때 체르넨코와 악수를 한 오웬은 그가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하는 것에서 심각한 폐기종을 짐작했다고 회고했다. 실제 체르넨코는 겨우 13개월 권좌에 머물다 죽었다.

오웬의 '체르넨코 진찰'은 소련 지도자의 건강에 관해 사람이 직접 수집한 '인간정보', 이른바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로서는 최고급 정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의사와 외무장관 경력의 인물이 직접 손을 잡고 숨소리까지 청진(聽診)한 셈이니, 아마도 영국 등의 정보기관은 앞 다퉈 오웬의 경험을 소상히 듣고 정보를 얻는 '디브리핑(debriefing)'을 했을 법하다.

지난 칼럼 얘기를 새삼 되풀이 한 것은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사진 한 장이 오웬의 '체르넨코 진찰' 못지않은 정보가치를 지닌 듯해서다. "양치질을 직접 한다"는 식의 '인간정보'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반쪽'이 된 그의 모습은 지금껏 북한이 공개한 어떤 사진보다 그의 건강상태에 관해 많은 정보자료를 담고 있다고 볼 만하다.

국내외 정보기관이 모두 주목했을 법한 사진을 우리 언론은 대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전했다. 그런 가운데 몇몇 보수신문이 의료 전문가의 안목으로 자세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 돋보였다. 북한과 김정일을 유난히 싫어하는지라 그의 건강에 다분히 악의적 관심을 쏟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사진을 진보 언론이 특히 소홀히 다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념이나 심리적 배경 등이 무엇이든 전문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북한 보도'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진보언론도 아주 예외는 아니지만 우리 보수언론이 김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 등에 관한 온갖 풍설과 역정보에 제멋대로 살을 붙여 전하기 일쑤인 사실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비록 그게 입맛에 맞는 소재였기 때문일지라도, 어느 때보다 긴요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북한 바로 읽기'의 모범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쯤에서 거친 질문을 하자. 북한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다는 진보언론이 오히려 객관적 보도에서 멀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질문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하겠지만, 북한의 종잡기 어려운 언행과 변화 징후를 분석하는데 힘 쏟기보다 노상 정부의 대북정책을 탓하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장거리 로켓 실험이든 개성공단 통행 제한이든, 북한의 움직임을 내부사정과 주변정세 등에 비춰 깊이 천착하지 않고 오로지 정부 비판에 매달리는 모습은 어색하다.

우리 내부 '권력 싸움' 벗어나야

그런 논리대로 정부의 대북정책이 달랐으면 북한의 행보도 지금과 근본적으로 다를지 의문이다. 햇볕 기조를 유지했다면, 장거리 로켓 카드를 꺼내지 않았을까. 단순무지한 논법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애써 외면한 채 정부 공격에 매달리는 바탕은 북한의 장래보다 우리 체제 속의 '권력 다툼'에 몰두하는 심리이기 십상이다. 그래서는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거대한 변화에 옳게 대처할 수 없다. '김정일 사진' 한 장을 놓고 지나친 비약일까.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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